정주영씨 현대 완전히 떠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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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결별선언이후 창당 작업에만 몰두/현대도 업무보고중단 외견상 정리/대주주로 간접간여는 계속될듯
돌연 정치인으로 변신한 정주영 전현대그룹 명예회장(77)은 정녕 현대그룹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인가.
정사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셋째동생 정세영 그룹회장(64)은 과연 현대그룹의 실질적인 새 지도자가 될 것인가.
정부의 금융압박과 현대자동차의 노사분규 등으로 내우외환에 빠진 현대그룹 주변을 이같은 의문부호들이 감싸고 있는 가운데 정주영씨는 일응 현대의 경영에는 초연한채 창당작업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모습이다.
그는 하루중 12시간을 서울 서대문구의 서진빌딩내 신당당사에서 머무르며 정치지망생등 10여팀을 만나고 각종 회의를 주재하는 등 매일 1백명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현대그룹측은 정씨가 연초 현대와의 결별선언을 한뒤에는 일체의 업무보고를 하지않고 있으며 현대자동차사태도 정씨가 걱정은 하고 있으나 관여는 하지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정씨가 계열 비상장사의 개인소유주식 처리를 자신이 하지않고 정세영 회장에게 맡기겠다고 한 점만 보아도 그의 현대 경영결별의지는 확고하며 그가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현대와 연결된 줄을 끊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가 현대의 대주주인 한에는 원격조종을 통한 간접적 간여는 몇년간 계속될 것이라는게 그룹주변의 지배적 관측이다.
특히 앞으로 3년정도 걸릴 것으로 보이는 후계구도조정(6명의 아들과 전문경영인 30여명사이 교통정리)은 그의 손에 좌우될 수 밖에 없으며 그가 애착을 갖고있는 북방사업도 주요 고비에서는 관여할 소지가 있다.
정씨는 현대그룹 북방사업의 주역이었던 자신과 이명박 전현대건설 회장이 떠난 공백을 메우기위해 미국 교수경력의 정훈목 현대건설 신임회장이 이 역할을 맡도록 최근 조정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가운데 현대측은 정세영 회장의 위상 정지작업을 시작해 눈길을 끌고있다.
그룹측은 우선 정세영 회장의 집무실을 그룹총수의 권위가 상징되는 장소로 옮겼다. 정세영 회장은 그동안 서울 계동 현대그룹사옥 8층의 현대자동차회장실에서 근무했으나 정주영씨가 이사를 간뒤 1주일동안 비어있던 12층의 대형 명예회장집무실로 지난 16일 자리를 옮겼다. 그룹측은 당초 이 방을 임원회의실로 쓸 것을 검토했다가 방침을 바꿨다.
현대측은 이와 함께 현대자동차 노사분규가 정리되는 다음주중 정세영 회장의 공식 기자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다.
정세영 회장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의 현대그룹 경영구상등을 밝힐 예정인데 이는 그동안 그가 정주영씨의 그늘에 가려 대외발언을 삼가왔던 점에 비추어보면 놀랄만한 변화다.
이는 정세영 회장을 현대그룹의 새로운 「간판」으로 다지기위한 것인 한편 정세영회장체제를 공인받음으로써 정주영씨의 정치행보가 현대에 불이익을 주는 연결고리를 끊어보려는 시도로도 풀이된다.
어쨌든 당분간 현대그룹 경영은 정주영씨의 언급처럼 정세영회장을 중심으로 한 각사 사장의 자율경영체제가 될 전망이다.
정세영 회장체제 등장후 각사 사장들은 『사장의 책임이 한결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저돌적이고 독단적인 정주영씨와는 경영 스타일이 사뭇 달라질 것으로 현대 일부 간부들은 내다보고 있다.
현대 경영구도의 앞날에는 정주영씨의 장남격인 정몽구(MK) 현대정공회장(2남) 측의 영향력강화시도가 큰 변수로 남아있다.<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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