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대북 접촉' 7대 의문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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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상회담 논의 정말 없었나=안씨는 10.20 대북 인사 접촉은 특사, 정상회담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씨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비밀 접촉의 목표는 남북 정상회담"이라고 주장했다. 안씨 등의 비선 접촉을 후방에서 지휘한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권씨가 팩트(사실)와 자기 생각을 섞어 얘기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상회담 같은 메가톤급 의제가 아니라면 왜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안씨가 직접 나섰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미사일 발사와 북 핵실험으로 꼬인 남북관계를 푸는 데 대통령의 측근이 '밀사'로 나서는 것 자체를 크게 탓할 순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안씨가 정상회담을 논의했지만, 그랬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하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왔다.

② 안희정은 30분 만에 끝났다는데=안씨는 "직접 만나 보니 북측 인사를 파트너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30분 만에 접촉을 끝냈다"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지침까지 받은 접촉을 탐색전 수준에서 끝냈다는 건 믿기 어렵다.

남북회담에 참여했던 정부 당국자는 "북한과의 접촉은 첫 대면 이후 얼굴을 익히고 긴장을 푸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며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은 이상 30분 만에 끝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상회담 논의 등이 결국 실패하자 접촉의 성격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려 '30분 만남'으로 축소했을 가능성을 내놓는다. 또 초반부터 대규모 지원 등 남측이 수용하기 힘든 무리한 요구를 북한 측이 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제기한다.

③ 노 대통령은 왜 만나라고 했나=북 핵실험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집권세력 386 라인의 초조함이 그만큼 컸던 것일까. 접촉 인사들의 면면은 격과 급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란 평이 많다. 노 대통령이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북한 상황을 체크해 보라고 한 것이 의문이다. 북측 상대인 이호남 참사는 1997년 안기부의 대선 개입 전략인 북풍사건에 개입했다고 한다. 이 참사를 안씨와 연결한 권오홍씨는 불법 방북 등으로 처벌된 전력이 있다.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가까이서 보좌한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도 안씨를 만류하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여러 가지 미심쩍은 상황과 정부 내 공식 라인의 우려 속에서도 접촉이 강행된 건 노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에게 전달된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의 보고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 것도 이 때문이다.

④ 이호남 참사 상급선은 누군가=권씨는 북한 이호남 참사의 상급선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보가 가능한 60대 인사"라고 주장한다. 안씨가 만난 이 참사의 윗선에 실세가 있다는 얘기다. 권씨의 언급이 주목받는 건 과연 안씨 일행이 이호남을 보려고 베이징까지 달려갔을까 하는 점이다. 실무 과장급인 데다 문제점이 드러난 이 참사를 접촉의 종착점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⑤ 50만 달러 왜 요구했나=권씨는 "안씨가 11월에 하겠다는 방북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 대가로 북측에서 50만 달러를 요구했다"며 "이에 대해 남측이 돈으로는 안 되니 대북 돼지농장 프로젝트로 하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씨와 함께 방북한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은 "50만 달러와 돼지농장은 관계없다"고 반박했다. 어느 쪽이 맞는 말인지 의문이다.

⑥ 김승규는 몰랐고 김만복은 알았다=국정원의 역할도 베일에 싸여 있다. 흥미로운 건 안씨의 방북 때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에게는 관련 정보가 보고되지 않았으나, 후임자인 김만복 원장에게는 보고가 됐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자는 "2000년 정상회담 당시 박지원-송호경 라인을 총괄지원해 대북 정보기관으로서의 위세를 과시했던 국정원이 언제까지 뒷짐을 지고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건의 전모를 대부분 파악했을 서훈 3차장(대북 담당) 라인이 어느 단계에서 안씨의 대북 접촉 문제점을 적극 제기했는지도 관심이다.

⑦ 또 따른 비선 라인은 없었나=장성민 전 의원은 "남쪽에 또 다른 비선 라인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2월 남북 장관급회담 재개 과정을 주목한다. 6자회담 결과가 불투명했는데도 2월 12일 한국은 남북회담을 북측에 제안했고 이튿날 북한이 바로 호응했다. 비선 라인은 이때도 가동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영종 기자

◆ 안희정(42)=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동지'이자 '동업자'로 불릴 정도로 신임을 얻고 있는 최측근 인사. 1992년 노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합류하면서 '노무현 사람'이 됐다. 2002년 대선 때 선거자금 모금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8.15 특별사면 때 복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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