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언론·정부 지원 '기자의 집' 난민 언론인 보금자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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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다 최근 프랑스에 망명을 신청한 라마드(가명.48)는 요즘 몹시 들떠 있다. 자신이 지난 2년간 취재한 알제리의 인권침해 사례와 사진들이 곧 책으로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알제리 보안당국으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감시를 받아오던 라마드가 지난 9월 체포 직전 가까스로 프랑스로 탈출할 때 가지고 나온 것이라고는 서류 가방 하나 분량의 취재기록과 사진들이 전부였다.

라마드는 "집 앞에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곧장 공항으로 달려가 주머니에 있는 돈을 톡톡 털어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며 씁쓸히 웃었다. 특별한 지인도 없던 프랑스에서 라마드가 책까지 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기자의 집(MDJ)' 덕분이다.

MDJ는 언론 탄압으로 조국을 등지고 망명지를 찾는 기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 피난시설이다. 뉴스 전문 라디오방송인 프랑스 앵포의 언론담당 전문기자 다니엘 오아용과 필립 스피노 PD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기자 난민을 위한 시설로는 세계 최초다. 지난해 5월 파리 근교에 처음 문을 열었다가 이달 초 파리 시내 주택가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옮겨왔다.

브러시 공장을 개조한 지상 2층 지하 1층의 작은 건물은 소박하지만 안락하고 깨끗했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PC 3대가 설치된 작업실과 소파.의자들이 갖춰진 접견실.회의실.도서관은 물론 직접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부엌과 식당.샤워실.세탁실 등이 고루 마련돼 있다.

건물은 파리시가 18년 동안 무상으로 빌려준 것이며 건물 개조 비용 77만유로(약 10억원)는 유럽난민기금.유럽의회.파리시의회 등이 부담했다. 연간 34만유로에 달하는 유지 비용은 카날 플뤼스 방송.르몽드 등 15개 프랑스 언론사가 공동 지원한다.

MDJ에는 현재 알제리.튀니지.벨로루시.미얀마 등 9개국 출신의 기자 15명이 수용돼 있다. 이들은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6개월간 머물며 새로운 삶의 터전에 정착할 준비를 한다. 이를 위해 MDJ 측은 난민 기자들에게 대중교통 비용과 전화카드 등을 지급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난민 기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그들이 언론.저술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MDJ는 난민 기자들의 언론학교 연수는 물론 그들이 후원 언론사나 지역언론 등에서 파트타임으로라도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적극 알선하고 있다. "가족과 재산 모든 것을 잃었지만 글을 계속 쓸 수 있다면 나는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라마드의 말이 모든 난민 기자들의 공통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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