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 + 덕장 + 지장 '김호철 리더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2003년 12월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사령탑을 맡은 김호철(사진) 감독은 "3년 내에 우승시키겠다"고 했다.

당시 많은 사람은 김 감독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강만수.송만덕(작고) 감독이 현대캐피탈을 거쳐갔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2년 만인 2005~2006시즌에 우승을 해냈고 2006~2007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선 삼성화재를 3연승으로 몰아붙였다. 이젠 두 팀을 '라이벌'이라 부르는 게 어색할 정도다.

◆ '맹장' 김호철=김 감독이 3년을 얘기한 것은 ▶선수들을 바꾸고▶선진 배구를 도입하고▶이를 강화하는 데 1년씩 걸린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 감독이 처음에 본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타성에 젖은 월급쟁이'였다. 훈련 시간만 때우면 "대학원에 간다"며 외출하기 일쑤였다. 칼을 빼들었다. 시즌 개막이 임박했는데도 외출하겠다는 주전급 선수에게 "이대로 나가 돌아오지 마라"고 했다. '팀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버리고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선수들이 확 달라졌다.

◆ '덕장' 김호철=김 감독은 겨울 시즌 중 선수들을 두 팀으로 나눠 경기를 붙인다. 진 팀은 밖으로 내보내 뛰게 한다. 추위 속에서 패한 이유와 이를 극복할 방법을 스스로 찾게 하기 위해서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번이고 반복해 시킨다. 패배주의를 날려 버리고 승부욕을 심어 주기 위해서다. 김 감독은 이들과 함께 뛴다. 함께 땀을 흘려야 감독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는 믿음 때문이다. 배구 감독들은 좀처럼 공을 잡지 않는다. 훈련의 방향만 잡을 뿐 공은 코치들의 몫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늘 공을 잡고 지낸다. 중년의 체력으로 선수들과 함께 뛰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김 감독이 올 시즌 내내 병원을 들락날락했던 이유다.

◆ '지장' 김호철=김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함께 일했던 도메니코 나사로 전력분석관을 데려왔다. 경기 내용을 데이터로 만들어 효율적인 공격과 방어법을 연구했다. 현역 시절 '컴퓨터 세터'로 불렸던 김 감독의 '데이터 배구'다. 시즌 전에는 이탈리아에서 피지컬 트레이너도 불러와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맡겼다. 프로그램에 따라 선수들은 시즌 중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계속했다. 현대캐피탈이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후반기보다 포스트시즌에 더 강해진 이유다. 김 감독은 세터 권영민을 들들 볶았다. 세계 배구는 토스의 스피드로 승부를 거는 추세다. 토스가 직선으로 빠르게 가다 보니 측면 공격은 거의 C속공이다. 상대 센터가 따라붙기 힘들다. 권영민의 토스는 포물선에서 어느새 빠른 직선으로 바뀌었다.

장혜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