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해안 양지바른 앞자락의 동백꽃 화신이 전해온다. 난동으로 설이 지나야 피는 동백꽃이 벌써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고 한다.
「붉디붉은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
우선 지상의 컬러사진들을 통해 동백꽃 소식을 접하면서 떠올려 보는 영탄이다. 지금은 추위의 극점인 소한과 대한 사이로 나목의 계절이다.
「활짝 폈던 꽃들도 이제는 졌고,나무들의 화려했던 모습이나 향기도 간데없이 쓸쓸히 서있다.」 옛 선인들이 읊조렸던 요사이의 자연감각은 이런 것이었다.
또 불가에서는 낙엽 떨어진 나무가 겨울바람에 몸을 드러낸다고 해서 「체로금풍」이라고도 했다. 북풍한설을 벌거벗은 몸으로 맞는 겨울나무는 바로 번뇌·망상의 나뭇잎을 다 떨어버린 신심탈락의 경지에 이른 참모습을 상징한다.
체로금풍의 겨울철 한산을 즐길 멋을 다하기도 전에 봄바람을 피우게 되었나보다.
『강원도 아리랑』은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를 마라/건너집 숫처녀 다 놀아난다」고 하지 않는가. 여인들의 머리단장에 쓰이는 동백기름에 대한 은근한 시샘이렷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야생의 겨울꽃은 없다. 동백이나 설중매가 있긴 하지만 모두 음력 정월이나 돼야 핀다.
「섣달 얼어붙은 음행은 운수가 이미 다했는데/한가닥 봄뜻이 가만히 통한다/대나무친구·매나무형이 응당 서로 사양하리니/눈속에 잎과 꽃의 푸르름과 붉음이 교영하는구나.」
설중 동백꽃을 읊은 보한재 신숙주의 시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기 때문에 그꽃을 차매화라 한다. 중국에서는 해황화라고도 한다.
중국의 고문헌들은 신라의 해홍화가 가장 아름답다고 찬양해 왔다. 우리나라로부터 중국에 이식된 동백은 동절의 명화로 예부터 시인문사들의 애상을 받아왔다.
유사정은 「작은 동산은 따습기전 아직도 추운데/동백이 꽃피어나니 낮이 길어지는 구나」(소원유한말온시해홍화발주지)라고 읊었다.
때이른 동백꽃 소식을 단순한 낭만으로만 즐기기 보다는 환경파괴로 인한 이상난동이 두렵기도 하다.<이은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