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계적인 우리 상표 옷 만들겠다"|양장분야 허인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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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삼성물산 에스에스패션 간이복 사업부 기술대리 허인수씨(36)는 국내의 최연소 명장이다.
젊디젊은 그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참 기능인들을 제치고 명장(양장 분야)대열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그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말해준다.『올해도 열심히 뛰어야지요. 제가 하는 일은 10여개 협력업체(하청업체)에 대한 제작기술 지도입니다. 협력업체를 돌아다니며 근로자들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적어도 제가 담당하는 업체에서만큼은 불량품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렵니다.
경남 김해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난 허씨가 국민학교만 마치고 양장일을 하게 된 것은 아버지(68)가 술을 너무 즐긴데다 빚 보증을 잘못 서 하루아침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기 때문.
부근에서 양장점을 하는 친척집에 얹혀 잔심부름을 하며 지내던 허씨는「이렇게 된 바에야 제대로 기술을 배우자」는 생각에 부산으로 가 범일동 노라노 의상실에 초보견습공(시다)으로 취업, 어깨 너머로 다리미질-마름질-제작-봉제-재단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익혔다.
각고의 노력에다 원래재능이 있었던 덕분인지 3년이 지나자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실력자가 됐고 청년 지방기능경기대회·전국기능 경기대회와 75년 스페인 마드리드 기능올림픽에서 차례로 금메달을 따내면서 1인자임을 입증했다.
기능올림픽 우승 이후 허씨는 24세의 나이로 시흥에 의상실을 차려 4년간 운영했으나 재미를 못 봤다. 손님들은 허씨의 앳된 얼굴을 보고는 돌아섰고 자재구매·수금 등 갖가지 경영문제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가게를 걷어치우고 다시 서울 명동의 유명 의상실에 취업한 허씨는 84년 삼성물산의 기능올림픽 출전선수 양성요원으로 스카우트 돼 88년부터 간이복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허씨는 삼성물산에서 일하는 동안 ▲제사처리 작업방법 개선 ▲이동식 행거를 이용한 작업능률 제고 ▲제휴선 라벨 컬러 구분으로 불량률 감소 등 많은 공정개선 사례를 남겼다.
『20년 앞을 내다보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기회 닿는 대로 체계적인 디자인 공부를 한 뒤 개인의상실을 열고, 다시 대규모 의류기업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귀족층이 아닌 일반계층을 위한 옷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 고유 브랜드를 붙여 외국에 파는 옷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허씨는 광명시의 3천5백만원짜리 전세아파트에서 아버지·부인(33)·두 자녀(7, 4)와 함께 넉넉지 못하게 살아가는 현재의 처지를 생각하듯이 같은 포부가『먼 훗날의 꿈』이라고 했다.
『정부는 말로만 기능인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하지 말고 실제행동으로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기능올림픽 입상자들에게 약속했던 아파트 특별 분양권만 해도 3년째 감감 무소식이잖아요. 정부가 적극 배려해줘야 우리들도 기 좀 펴고 살지요.
그는 명장까지도 기죽고 산다는 말을 할만큼 기능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 풍토를 안타까워했다. <김동균 기자>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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