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선택 2007, 그 리더십의 나침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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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 조직을 붕괴시키고 한 정당을 몰락시키고, 한 국가를 황폐화하는 데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칠 의지가 굳고 사악한 사람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가 권력의 핵심에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그렇다. 지도자가 항상 문제다. 투표로 뽑으면 도덕성이나 능력면에서 최선이 아닌 차악(次惡)의 결과가 나오고 임명제에선 코드 인사이기 쉬워서다. 대선(大選)의 해로 꼽는 올해 우리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들이 나왔다. 자기 자랑으로 가득찬 후보 소개서가 아니다. 역사를 뒤지고, 성공한 지도자를 분석해 독자들에게는 어떤 후보를 지지할지를 알려줄 나침판이, 스스로 '용'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겐 어떤 품성을 갖춰야 하는지 비춰볼 거울 구실을 할 책이다.

앞의 구절은 '지도자의 조건'에서 골랐다. 이탈리아 출신의 지은이는 정신분석학과 심리학.통계학을 공부하고는 사회학 교수를 지낸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그가 세계사, 기업경영, 정치 등에서 갖가지 사례를 뽑아내 이상적 지도자의 요건을 신문칼럼식으로 정리했다.

주제넘은 사람은 있지도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확신하고 오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묵살하는데 이들이 권력을 쥐지 않는 한 위험하기보다는 성가신 존재다. 그러나 이들이 지도자로 나서면, 황당한 프로젝트에 손대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유능한 사람을 무시해 작게는 가정을 크게는 나라를 어지럽힌단다. 오는 대선에서 한 표를 행사할 때 참고할 만하지 않은가.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가르침도 있다. 지도자의 덕성 목록이다. 거짓. 이중성.음모. 위선에 반대되는 진실성, 편견과 비방에 좌우되지 않을 객관성, 가장 힘든 순간에도 평온함과 명석함을 유지할 강인한 정신력, 쓴소리를 경청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겸손함,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용기, 남을 배려하고 모범을 보이는 관대함, 인재를 고르는 판단력과 불의를 못 견디는 정의감을 갖추지 못했다면 스스로 물러날 일이다.

'지도자…'가 리더십 사전 분석서라면 '독재자 리더십'은 결과를 보고 이상적이고 창조적인 지도자의 요건을 가려낸 책이다.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중국의 작은 거인 덩샤오핑,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 케말 파샤와 박정희 대통령을 다뤘으니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언론계와 학계를 넘나든 지은이는 이들을 무조건 상찬하거나 순도 높은 도덕적 잣대로 저울질하지 말란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는 '정치적 리더십 부재(不在)시대'에 살았다며 국가의 이익을 긴 안목으로 그려낼 실용적 통치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싱가포르를 불과 20여 년만에 '강소국(强小國)'으로 만든 리콴유 전 총리를 보자. 그의 리더십은 원칙론과 실용주의에서 나왔다. 1986년 자신의 최측근이자 국가개발부 장관인 태 치앙완이 수뢰 혐의로 기소된 뒤 누명을 벗겠다며 면담을 요구했으나 부패혐의조사국의 조사대상자라고 냉정히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했다. 한 때 부동산 투기 구설수에 올랐다가 무혐의가 드러난 후 부동산 급등 차익에다 사재를 보태 100만 싱가포르 달러를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실용주의에도 철저했다. 65년 영어를 공용어의 하나로 택한 것이 좋은 예다. 자원이 없는 싱가포르가 세계 유수 기업을 유치하고 세계 물류.항공의 허브로 도약하는 데 큰 몫을 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그리고 지도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정치적 리더십의 본질은 불변이라며 여섯 가지 교훈을 끌어냈다.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얻을 비전을 제시했고, 강력한 실행력을 갖췄으며, 경제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일회담. 베트남 파병을 밀어붙일 정도였던 실용주의 등이 그것이다. 인상깊은 것은 이들 모두 막강한 권력을 지녔지만 하나같이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은 각막은 필요한 이에게 주고 몸은 병원의 해부용으로 쓰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니 말할 여지가 없다.

말로만 민주제단에 몸 바친다며 측근이 비리도 막지 못하고, 후세의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며 국민적 분열과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가짜 지도자'들이 설 땅을 없애기 위해 전 국민이 읽어야 할 책들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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