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로 나눠본 감독인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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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영화감독은 크게 1세대(일제), 2세대(해방∼6·25), 3세대(6·25후∼60년대), 4세대(70년대), 5세대(80년대)로 분류된다.
한국영화의 효시는 1919년 김도산의 연쇄극 『의리적 구투』, 최초의 극영화는 윤백남의 『월하의 맹서』(21년)다.
1세대의 대표감독은 나운규(아리랑·26년)와 이규환(임자없는 나룻배·32년)이다. 두사람은 일제의 강압하에서도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영화를 만들었다. 이규환의 수제자는 유현목·이만희.
2세대대표는 최인규(자유만세·46년). 그는 신상옥·홍성기·정창화를 길렀다. 이들은 유현목·이만희와 함께 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꽃피웠다.
3세대는 기술적인 면의 개안과 상업적인 성공으로 영화가 대중문화의 총아로 군림한 때였다.
신상옥은 신필름이란 메이저를 경영, 대부노릇을 하며 이형표·임원식·변강호·이강호·이경태등을 배출했다. 액션 위주의 정창화밑에서는 임권택·정진우등이 연출수업을 했고 리얼리즘의 기수 유현목은 이성구·박상호·김호선등을 배출했다.
김기영·이강천·김소동등이 이 시기에 활약했고 문예영화로 이때를 풍미한 김수용은 『갯마을』(65년)이후 70년대까지 정력적으로 일했다. 김수용 밑에서는 조문진·이원세·정지영등이 연출에 입문했다.
이만희가 『돌아오지 않는 해병』(63년)을 필두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정소영은 최루물 『미워도 다시한번』시리즈로 인기를 끌었었다. 이두용은 이때 정소영의 조감독이었다.
70년대의 4세대는 임권택과 정진우의 도약의 시기였고 이장호(별들의 고향·72년) 김호선 (영자의 전성시대·75년)의 데뷔한 때다.
임권택은『잡초』(73년)이후 대변신, 오늘날까지 영화계를 이끌고있고 정진우는 『심봤다』(79년)등 수준높은 작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노세한·곽지균이 임권택밑에서, 김성수·김행수가 정인엽밑에서 입문했고, 이두용은 『초분』(77년)이후 독자적 입지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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