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옐친 주도권 잡기 치열/베이커에 서로 자신역할 “강조”

◎“「개방문」연 공 인정해 달라”/고르비/내정장악력등 현실론 주장/옐친
러시아공화국을 중심으로한 슬라브계 3개 공화국이 전격적으로 소 연방과 고르바초프연방 대통령의 운명을 하루 아침에 부정하는 선언을 발표한 이후 소련을 방문한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의 활동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베이커장관의 방소를 둘러싸고 미국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간의 주도권 쟁탈전도 점점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16일 각각 베이커장관과 2시간,4시간의 회담을 가진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옐친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통해 상이한 전략과 입장을 강조했으며 베이커장관은 소련의 국내정치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미국의 입김을 최대한으로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보였다.
16일 오후 늦게 기자들에게 공개된 이날 회담의 내용에 따르면 옐친 대통령은 구소연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론에 입각해 미국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핵문제를 포함해 러시아공화국의 승인,구소련의 유엔상임이사국 자리의 러시아공화국 승계인정 등 20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핵문제에 관해 미국을 안심시키고 미국이 안심할 파트너는 러시아공화국과 옐친 대통령 자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듯 회담(4시간중 절반이상)의 상당시간을 이에 할애했다는 후문이다.
반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외관계부(구외무부)장관,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 전대통령고문,안드레이 그라초프 대변인 등을 배석시켜 자신의 영향력이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음을 강조한뒤 『소련이 현재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즉 옐친 대통령은 현상황과 자신의 내정장악력을 강조했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자신에게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채를 무기로 자신의 입지를 강조한 셈이다.
베이커 장관은 이러한 양지도자의 경쟁관계를 의식,구체적인 확답을 주지않은채 미국의 관심과 입장을 설명해 나갔다고 한다.
이날 회담에 참석한 그라초프 대변인등 참석자들을 통해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베이커장관은 옐친 대통령과는 핵문제를 포함,소련의 현상황하에서 긴급히 요구되고 실질적으로 처리해야할 문제들을 논의했다고 한다.
반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는 소련의 현 시국에 관해 좀더 포괄적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커 장관은 양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특히 핵문제와 소련의 대외의무 준수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베이커장관에 대해 옐친 대통령은 독립국가공동체 회원국들이 공동의 국방정책을 수립,집행할 원칙에 관한 협정을 체결할 것이라는 점과 이를 통해 핵등 전략무기,해군·방공군·공군 및 정보업무 등을 공동으로 관장할 것임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의 관측통들은 최근 옐친 대통령의 행동과 베이커 장관과의 이날 회담,회담후의 기자회견등을 놓고 분석해 볼때 옐친 대통령과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옐친 대통령이 이미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미국도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문제는 옐친 대통령의 지도력과 경제정책의 실패라고 전망했다.
또한 이들은 현상황에서 미국의 최대관심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소련이 두번다시 그들의 경쟁국 및 위협국이 될 수 없도록 약화시키면서 핵을 어떻게 하면 보다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따라서 베이커장관의 이번 방문은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의 대소정책을 결정짓는 상대역을 고르기위한 실무방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즉 베이커장관이 모스크바 연쇄회담을 끝낸후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카자흐 등에서 핵문제와 독립국가공동체의 운명 등에 대해 현지의 지도자들과 회담한뒤에는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모스크바에는 이번 베이커장관의 방문이후 발표될 미국의 대소정책(러시아·우크라이나의 승인문제 등)의 추이가 곧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옐친 대통령의 정치생명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될 것이란 분석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모스크바 김석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