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7월「배끌기 축제」고구려인 왕래 기린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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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구려 이주민과 관련한 관동지방 오이소(대기)의 민속으로 7월 「배끌기축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회 인용했던 일본작가 시마자키는 고구려인과 도조신축제의 관련을 확인하면서 이어 「배끌기축제」를 얘기한다. 오이소의 여름축제는 전통적으로 7월17일 열리는데 용머리로 장식된 두 척의 배를 오이소 해안으로 끌어올리며 노래를 부른다. 시마자키는 이 축제에 대해『고구려로부터 이주한 기념인지 이때 부르는 「기야리노래」는 조선의 「아리랑」과 꼭 닮았다』고 쓰고 있다.
이곳 향토사가의 말에 따르면 여름축제는 예부터 고려신사 전통에 따라 불교색이 짙은 축제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축제에 쓰이는 두 척의 배 이름도 권현구·관음구이었다. 이는 고려사에서 모시던 고구려신인 고려권현을 기념하는 이름이다.
고려사의 제사는 1월의 칠초제, 4월의 춘제, 7월의 하제로 세가지다. 그중에서도 7월의 여름축제가 가장 유명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축제중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축가를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원래 권현구의 유래를 살피자면 응신건황 l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다쪽이 아주 떠들썩하여 바닷사람들이 이상히 생각하고 멀리 바라보았더니 외국배가 여덟폭의 돛을 달고 쏜살같이 오이소쪽으로 노를 저어왔소.
어느새 배는 선창에 닿았고, 배로부터 한 늙은이가 나타나서는 뱃전에서 소리쳤소. 「너희들은 잘 들어라. 나는 일본사람이 아니고 바다를 건너온 고구려의 수호다. 국난을 피해와 일본에 뜻을 두었으니 너희들이 내말을 들으면 내 이곳 오이소의 수호신이 되어 자손 번창을 지키리라」. 「아리아리가다야」하고 예를 올리오니 모쪼록 어부의 배에 옮겨타고 올라오소서.
이때부터 권현님을 태우고 모시는 배가되었으니 권현구이란 이것을 가리킨다오. 소우리야 양 야이양.』
한 사람이 이 노래를 선창하면 모두 따라 불러 축제가 무르익게 된다.
축가 내용이 고구려와의 관련 내력을 뚜렷이 전해줌은 물론이다. 여기서는 제신이 바다 건너 외국에서 와고려산에 정착하는 과정과 이에 따른 옛 의례를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도래자를 특히 중요한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예부터의 풍속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런 도래자에 대한 신앙이 민족신앙의 근간이 되었다고 한다. 고대에는 현세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은 바다 저편 이방에서 오는 손님이며, 이를 상세신이라고도 일컬었다. 이처럼 멀리서 오는 손님을 마레비토(희인)라고 하는데, 『일본서기』 인덕12년의 기록중에는 「고구려의 손님」이라고 쓰여있기도 하다. 도래신인 명신을 「이웃나라에서 온 신」이라 했고, 이와 관련해 조선까치 까지도 「마라우도가라스」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처럼 바다를 건너온 손님에 대한 신앙은 한민족 도래인과 관련하는 모든 지역에서 신앙으로 퍼져갔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이소 7월 축제 축가는 이곳 고려신사의 제신 고려야광이 고구려에서 온 도래신임을 구체적 내력으로 전해주고 있다. 바다를 건너온 객신 신앙이 깊은 일본 사람들에게 도래인 야광은 자신있게 외쳐 말했던 것이다.『내 이곳 오이소의 수호신이되어 자손 번창을 지키리라』고 그리고 이곳 오이소를 개척하고 제신이 되었던 것이다.
이 축제와 관련해 또 하나지 나칠수 없는 것이 제물로 소나 말을 바쳤다는 풍속이다. 물론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풍속이지만 인근 히라즈카시 유적에서 마소의 이빨이 많이 발견된 점이나 관련 연구조사등에서 알려진 사실이다. 마소를 죽여 수신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은 우리나라에서도 기우제나 어촌민속제례의 오랜 풍속이었다. 『일본서기』중 7세기 중엽 기록에는 마소를 죽여 제사지내는 한민족계 축제가 많았는데 이를 금지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마소의 사육이 누에나 다른 생물을 기르는 기술과 함께 한민족 도래의 문화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는 마을굿이나 민속의례에서 반드시 수소를 제물로 바친다. 또 탕신제·장승제가 끝난 뒤에는 우물의 샘굿이 지금껏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고구려 도래신에 대한 신앙전승의 모습은 축가 끝부분에서 가장 뚜렷이 확인된다.
축가중 일본인들은 고구려 도래인에게 『아리아리가다야』라고 외치며 반긴다. 이는 현인신에게 감사드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노래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소우리야양야이양』은 『아리랑』 후렴처럼 모두 함께 불러 축제 분위기의 흥을 돋우는 기능을 한다.
오이소의 7월 축제는 최근들어 격년으로 열린다고 한다. 필자는 지난 여름 며칠간 이곳 오이소의 파도소리에 자고 깨면서 이 바다와 고려산으로부터 일본의 관동지방에 퍼져나간 한민족 도래의 역사를 뼛속 깊이 호흡할 수 있었다.
더구나 고구려 도래인의 해변인 이곳 해변에는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였던 이은과 일본인 아내 이방자부부가 살았던 창낭각이란 별장이 남아 있어 야릇한 감회를 자아낸다. 해변 양지 바른곳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별장은 조선 침략의 공신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별장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얘기를 듣고선 더욱 착잡한 심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김태준(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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