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무역의 날/길진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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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해 수출을 마무리하면서 잔칫집이 돼야할 무역의 날이 흡사 초상집 분위기다. 내년도의 수출을 다지는 결의조차 보이지 않는다.
꼭 27년전인 64년 1억달러 수출을 계기로 수출의 날을 만들었고 14년전(77년)1백억달러 수출목표를 달성했던 우리나라가 역사상 처음으로 1백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달성」했다. 무역의 날을 「수입의 날」로 바꿔야할 판이다.
무역의 날 행사를 주최한 무역협회는 내년의 적자폭이 올해보다 더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기념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어느 업체 대표는 『이번에 아이디어완구 수출로 상을 받긴 했지만 내년에는 이 분야도 장사가 안돼 곧 업종을 바꿀 계획』이라고 말한다.
다른 수상업체들도 내년 수출을 어떻게 해나갈지 벌써부터 조바심하고 있다.
수상업체선정에 참여한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념식을 빛낼 마땅한 대상업체가 없어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무역적자가 지난 25일 현재 1백19억달러에 이른 반면 이웃 일본은 10월까지만 6백18억달러 무역흑자,대만도 1백8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오늘의 무역적자가 과성장에 따른 부작용이며 구조적인 경쟁력 약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일하고 기술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면서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
정부 일각에서는 『GNP(국민총생산) 2∼3%이내에서의 무역적자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무역적자는 따지고보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적자(손실)·흑자(이익)의 개념과는 다르다. 수출·수입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적자가 나기도 하고 흑자가 나기도 하는 나라에서의 얘기다.
4년간의 반짝 흑자가 끝나고 작년이후 만성적인 적자시대로 다시 빠져드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형편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무역적자로 나타난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묘방은 없다. 어느 한 분야의 각성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결국은 정부·기업·국민등 모든 경제주체가 무역의 날을 계기로 마음을 고쳐잡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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