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이 무서운 세상(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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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더이상 찾아오지말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그만 정신없이 총을 쏘게된 것 같습니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본동 신안미용실안.
이혼한 부인을 찾아갔다가 말다툼끝에 권총으로 부인의 머리를 쏴 중태에 빠뜨린 김현용순경(39)이 고개를 떨군채 범행순간을 재연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범인의 얼굴이나 한번 봐야겠다』며 2백여명의 주민이 몰리는 바람에 미용실 앞길은 순식간에 장터를 방불케했다.
특히 아주머니들은 김순경이 얼마전에도 이곳에서 부인을 심하게 때려 고발까지 당했었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미용실안에는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설명해주듯 어지럽혀진 집기와 말라붙은 핏자국등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몇달전 의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또다시 경찰관 총기난동사건이 일어나다니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올 지경입니다.』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저마다 근무중인 경찰관이 총을 함부로 쏴대다니 누굴 믿겠느냐며 불안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러나 김순경은 주위의 이런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겁을 주려고 공포탄을 쏘려했다』『위협발사를 하는 순간 아내가 손목을 잡아 머리에 맞았다』는 등 우발적 사고라고 우기기에 바빴다. 현직 경찰관이어서인지 도피중 자신에게 유리한 정황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았다.
전날까지도 김순경의 동료였던 한 경찰관은 김순경이 『아내가 정말 죽지 않았느냐』고 거듭 물으며 삶에 강한 집착을 보이더라며 안쓰런 표정이었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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