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를 읽고…|교과개편은 학문적 연구경험이 바탕돼야||기술·가정 통합환영에 이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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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제6차교육과정 개정시안이 발표된후 관련 학계에서는 찬성보다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민감한 반응에 대해 접단 이기주의적인 발상이라며 관련 학계의 주장을 좀처럼 이해하려 들지 않는점은 올바르지 못하다. 물론 어느 측면에서는 그러한 면도 없지 않으나 각교과 전문영역의 오랜 학문적 연구경험들을 인정해 주면서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새로운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민주적이고 대안있는 개혁의 방향이라 생각된다.
본 지면을 통해서도 이에 관련된 주장들이 많이 논의된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본인은 중앙일보11월4일자(일부지방5일자) 「시각」란을 통해서 주장된 이진분씨의 「성차별 없앤 중학교 기술·가정교과 통합환영」의 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이진분씨의 「기술」「가정」교과의 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지금의 교육과정이 제도적으로 성별 불평등의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배경적 설명에는 충분히 동감하지만 다음 두가지의 방법적인 문제에는 반대한다.
첫째는 통합될 교과의 명칭인데 개정시안에는 「생활관리」라고 되어있고 이진분씨는 「생활과학」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기술」「가정」교과의 오랜 전통을 무시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사실 이들 교과가 오늘날까지 존재해온 것은 뚜렷한 이유가 있으며 축적된 지식의 구조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선진국 어디에 가도 교양교육으로서의 「기술」「가정」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살린 명칭을 가지고 있고, 가까이 일본에서도 「기술」「가정」의 통합 필요성을 인정하고서도 명칭을 「기술가정」으로 하고 있는 점은 그교과의 학문적 뿌리나 전통은 살려주자는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통합교과의 명칭에 대한 탁상공론적인 논의는 기술학 혹은 가정학의 학문적 전통과 유산을 단절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
두번째는 두 교과가 남녀 모두에 필요하다는 문제가 왜 통합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통합이 아닌 하나의 방법은 「기술」과 「가정」의 교과를 그대로 두고 남녀 모두가 두 교과를 배우는 것이다.
이는 「기술」과 「가정」교과의 전통성을 이어받을때 그 교육효과가 있는 것이지, 두 교과성격상 올바른 통합내용이 조직될 수 없는 변질된 새로운 교과내용으로는 우리가 요구하는 기대와 효과를 성취할 수없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대비하는 교육과정의 시안이라면 그 시안에 대한 폭넓은 의견수렴은 당연한 일이며, 특히 각 교과전문가의 오랜 연구경험을 무시하고서는 이미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점을 주지하고 백년대계인 교육의 방향을 논함에 있어 신중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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