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악연(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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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버지도 82년 뺑소니사고로 돌아가셨는데 하나밖에 없는 오빠마저 뺑소니차에 잃어버리다니….』
3일 오후 서울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귀가길에 뺑소니사고를 당해 숨진 KBS성우 경진호씨(28)의 빈소앞에서 동생 정심씨(23)는 넋을 잃고 앉아있는 어머니(60)의 손을 잡은채 한동안 말을 잇지못했다.
숨진 경씨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88년 KBS 전속성우 21기로 입사,그동안 KBS라디오 간판프로인 「문예극장」「실화극장」등에서 맹활약 해온 촉망받던 성우.
경씨는 이날 녹음을 마치고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작품에 대해 토론한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다 사고를 당했다.
『쓰레기더미를 치고 지나친 것으로 착각했어요. 사람을 친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맥주한병을 겨우 마셨을 뿐인데 취하다니요.』
사고직후 승용차 번호를 기억한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수사를 벌인 형사대에 붙잡힌 뺑소니 운전자 김모씨(40·오퍼상)는 뻔뻔스럽게도 범행을 부인,경씨 가족들이 치를 떨게했다.
『사람을 치고 어떻게 그냥 달아날 수가 있습니까. 조금만 일찍 손을 썼더라면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는데….』
영정앞에서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처절한 오열이 가슴을 찢는듯 했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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