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1부] 여름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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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엄마는 세상이 다 알아주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하지만 내가 다시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는 빈털터리가 되어 있었다. 인터넷으로 싸구려 옷들을 사서는 "위녕 이거 얼만 줄 아니? 8800원이야." 어린 애처럼 좋아하는 엄마, 일 안 하는 내 친구 엄마들도 다 들고다니는 명품 핸드백 하나 없는 엄마가 어쩌다가 돈을 다 잃어버렸을까. 나는 엄마에게 묻지 않았고 엄마는 그저 "돈이 다 어디론가 가버렸어"라고만 대답했다. 그건 아마 엄마의 이혼과 관련이 있는 거 같다고 나는 막연히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이혼을 세 번이나 한 여자였다. 엄마가 두 번째 이혼했다는 소식은 풍문으로 들려왔었다. 당시 아빠는 아직 새엄마를 만나기 전이어서 우리 집에는 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할머니가 머뭇거리더니 아빠에게 말했었다. "위녕 에미 또 이혼했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밥을 오래오래 씹더니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우리집의 식탁에서 "위녕 에미"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공연한 얘기를 꺼냈나, 하며 밥상을 치우셨다. 할머니에게는 자신의 아들인 아빠가 나보다 언제나 더 중요했다. 내가 영문도 모른 채로, 엄마라는 단어에 공연히 서글퍼져서 눈물을 참으려고 밥그릇에 얼굴 처박고 있는 것 따위는 안중에 없고 아빠가 밥을 먹다 말고 방으로 들어간 것만 중요한 일인 듯했다.

"이제라도 다시 합쳤으면 좋겠구나… 니 애비도 아직 혼자고. 싹싹하고 잘했는데 세 며느리 중에 제일 나한테 잘했는데."

머릿속으로 빠르게 아빠와 엄마 할머니 그리고 내가 함께 사는 집이 스쳐 지나갔다.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처음 들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무대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런 무대는 내게 있어서 존재하지 않았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내게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커다란 공허였는지도 처음 알았다. 그건 다른 사람들의 눈길, 동정 어린 시선들하고는, 말하자면 차원이 다른 일이었던 것이다. 내가 정말로 엄마 없는 아이라는 것을 그 순간만큼 실감한 적은 아마 그 후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순간, 아빠의 격한 음성이 들렸다.

"어머니 제발 애 앞에서 그만하세요."

조용한 아빠가 할머니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집 안에서 그렇게 큰 소리를 지르는 것도 처음 보았다. 놀라기는 아빠 자신이 더한 거 같았다. 아빠는 입술을 한번 앙 다물더니 천천히 말했다.

"애 앞에서 그 사람 이야기 꺼내지 마시라구요."

나는 아직도 아빠와 엄마가 왜 헤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묻지 않았던 거다. 왜냐하면, 아빠는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도 있다. 나도 그 이유를 딱히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는데, 내가 그 이유를 듣고 나면 아빠와 엄마 둘 중의 하나를 정말로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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