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영원한 의협 정신의 총화|이문열 편저 『수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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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국인들은 일상의 관용어로 「핍상양산」이라는 말을 쓴다.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어떤 일에 개입할 때 쓰는 말이다. 관리의 핍박에 못 이겨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처자식을 버리고 정든 고향을 떠나 양산박에 모일 수밖에 없었던 『수호지』의 주인공들, 1백8인의 크고 작은 두령들이 겪는 자초지종이 중국인의 일상용어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만큼『수호지』는 중국인, 아니 한자어 권에 속한 동양인 모두가 즐겨 읽는 민초의 삶과 애환이 담겨있는 민중의 소설인 것이다.
『수호지』는 『삼국지연의』나 『열국지』처럼 지배자의 역사를 기술한 기록이 아니다. 왕조 중심의 정치사적 접근도 아니고 관료 중심의 엘리트 소설도 아니다.
오히려 지배자의 학정에 못 이겨, 관리들의 부당한 횡포에 반발하다가, 하급관리의 가렴주구에 분노를 느껴 관직과 재산, 그리고 고향을 등지는 의리의 도둑 떼 이야기다.
『수호지』내면에 흐르는 이 반관적 민중의식이 역대 왕조에 의해 금서로 규정되었고 또 그런 이유 때문에 길거리 저자에서 민중 연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작가 이문열의 민음사판 『수호지』는 17세기 명 문장가 김인서(성탄)가 정리하고 논평한 70회 본을 텍스트로 삼았다. 전문가들의 논증에 따른다면 송대의 선화유사라는 기록에 나타나는 36인의 도둑이야기를 근거로 송강 등 108인의 파란만장한 소설로 발전시킨 것은 시내암이나 나관중이라 하고 양산박에 호걸이 모이기까지의 구성은 시의 작품이고 송강이 조정에 귀순해 도적을 토벌하는 뒷부분은 나 또는 다른 작가의 윤색이라는 게 보통이다.
중국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대체로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그 하나는 통치와 지배의 제도적 장치에 따라 파악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통치권 밖의 여러 요인들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앞의 방식이 정치사적 접근이라면 뒤의 방식은 사회사적 접근이 된다. 특히 사회사적 접근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이 통치권 밖의 피지배계층,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이들 소외계층은 홀로서는 협객으로 전국을 표표히 유랑하고, 때로는 무리를 이루어 임협 집단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송강 집단의 형성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들 협객 또는 임협 집단은 한 지역 한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정의와 시대정신을 표방하면서 때로는 반관적, 때로는 반정부적 깃발을 세우기도 한다.
한 제국을 형성한 유방 집단이나 명나라를 창건한 주원장, 가깝게는 모택동, 이들 모두가 임협 집단을 통해 새 국가를 건설한 협객들인 것이다.
모택동은 즐겨 『수호기』를 탐독했고 그의 게릴라 부대 초기 근거지였던 정강산을 양산박에 비유하기도 했다. 모가 집권하기까지엔 모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탁월한 지도력도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결정적 요인은 역시 그들을 하나로 묶는 임협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군벌의 횡포와 국민당 정권의 부패 등으로 생겨난 민중들의 반관·반정부적 저항심이 임협 집단의 정의감과 연계되면서 새로운 국가가 생겨나는 것이다.
중앙집권체제와 임협 집단간의 교묘한 균형, 그 균형이 깨지면서 생겨나는 무질서와 파국, 그리고 새로운 균형, 이러한 순환의 고리가 동양적 전제국가의 국가 재편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수호지』는 이러한 임협 집단의 생성과 소멸을 통해 지배계층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세훈으로 존재한다. 작가 이문열이 『수호지』집필을 위해 어렵사리 양산박을 찾았지만 그의 여행기에서 적고있듯 오늘의 양산박은 초라하고 빈약한 야산일 뿐 깊은 계곡, 우람한 숲은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수호지』속의 양산박이란 원래 실제 하지 않는 우리 의식 속의 이상향,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는 민주의식의 집결지 또는 민주화를 지향하는 시민의식의 본거지로서 다만 마음속에 살아있는 허구의 실체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수호지』, 그것은 영원한 임협 정신의 총화이기 때문에 모두의 사랑을 받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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