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소탕 안 하면 파키스탄 원조 끊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조지 W 부시(사진) 미국 대통령이 25일 테러와의 전쟁에서 맹방 역할을 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이례적으로 경고장을 보냈다. 오사마 빈 라덴 체포와 알카에다 소탕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끊겠다는 내용이다. 이란과의 핵 대치 상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동맹인 파키스탄을 강하게 다잡은 것이다.

◆알카에다 새 근거지=부시 대통령이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기로 결정한 배경은 최근 파키스탄 국경이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괴멸된 것처럼 보였던 알카에다 고위 지도자들이 국경지대에 새로운 기지를 속속 구축하고 있다는 정보가 지난주에 나왔다. 미 정보 당국은 최근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북부 와지리스탄에 작전 기지를 두고 있다는 증거가 명백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정부가 이 지역의 치안권을 부족들에게 넘긴 것이 실수였다고 정보 당국은 분석했다.

이 같은 소식은 부시 대통령을 언짢게 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파키스탄을 방문하는 등 부시는 무샤라프를 테러와의 전쟁 전초 기지로 간주해 왔다. 파키스탄은 현재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미국의 원조를 받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3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포함해 총 7억8500만 달러를 파키스탄에 약속했다. 이에 대해 무샤라프는 알카에다 소탕을 수차례 다짐해 왔다. 그러나 알카에다와 탈레반 잔당 세력이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새 기지가 들어선다는 정보가 나오면서 무샤라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한편 해외 순방 중인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26일 파키스탄을 전격 방문했다. 체니 부통령은 이날 이슬라마바드에서 무샤라프 대통령과 만나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논의했다고 파키스탄 고위 관리가 말했다. 이어 체니 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다.

◆"이란 압박용"=중동 언론은 이번 부시의 서신이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미국의 포석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중동에서 따돌림을 받을 정도로 대테러전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가 서신을 보내기로 결정한 날은 공교롭게도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7개국 외무장관 회담이 열린 25일이었다.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터키.요르단 등 중동 내 친미 수니파 국가들만 참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될 예정인 이슬람권 정상회담의 준비회의 성격이었다.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가졌거나 시아파 국가는 이번 회의가 '반(反)이란 수니파 동맹'을 구축하는 자리라며 거부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지난주 "이란이 주도하는 '시아파 초승달' 패권에 맞서는 수니파 동맹이 파키스탄에서 결성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남다르다.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파키스탄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란과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미 항모 2척, 이라크, 파키스탄이 발진기지가 될 전망이다.

미국은 또 아프리카에 '제2의 파키스탄'을 만들고 있다. 에티오피아다. 지난해 말 소말리아 이슬람 군벌 소탕에 에티오피아는 지상군을 파견하고 미 공군에 기지를 내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