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 남북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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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마크라고 하는 나의 미국인 친구는 독신주의자에 여행광이다. 본업이 화가지만 그림은 언제 그리나 싶게 지구촌 이곳저곳을 숨가쁘게 들쑤시고 다닌다. 깊은밤 동경이나 홍콩의 호텔에서 전화를 걸어오는 것은 예사이고 한겨울 깡추위에도 불쑥 김포에 내려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기 일쑤다.
언젠가 그 친구가 나에게 불쑥 『오늘날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뭐냐』고 물어오길래 얼결에 남북통일과 동서화합의 문제인 것 같다고 대답해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꼬깃꼬깃한 여행용 세계지도를 펴서 한반도를 살펴보며 여간 곤혹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말한 남북이나 동서를 나의 서투른 영어탓에 자기네 나라의 동부·서부 개념쯤으로 받아 들였던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동부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서부인가, 그리고 남과 북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경계인가, 이렇게 작은데 중부는 어디인가, 또 동과 서 남과 북이 어떻게 틀리고 왜 그렇게 문제인가, 이렇게 작은데 왜 자꾸 나누는가 등등 그의 질문은 호기심많은 국민학생처럼 끝이 없었다.
그리고 환경이나 공해, 교통이나 자원문제 같은, 살아가는데 직접적인 문제는 제쳐두고 왜 한국인은 「쓸데없이」 동서나 남북같은 문제를 만들어 놓고 고민하느냐고 정색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는 참으로 엉뚱한 일로 고통받고 있구나 싶었다. 이제 지구상에서 단일민족으로서 나뉘어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이 유일하다. 남북 유엔가입이 결정나자마자 일본은 남과 북을 두개의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곧이어 영국과 미국이 그렇게 하리라고 외신은 전한다. 이러고보니 유엔 가입이 진정으로 축하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느 해인가는 남과 북 이제3국에서 배구시합을 벌여 남쪽이 이기자 목이 터져라 남쪽을 응원하던 교민들이 승리의 감격에 선수들을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이 그쪽 텔리비전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이 일을 두고 그쪽 신문의 가십에 이해하기 어려운 민족이라고 보도되었다던가.
한나라의 문화란 그것 홀로 땅에서 솟아나거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뉘고 찢긴 당에서는 상처받고 편향적인 문화 밖에는 나오지 않는 법이다. 당이 나뉘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정신적 유대감으로서의 문화적 고리가 단절되어 버리는 일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오늘의 북한미술이 이미 심정적으로 우리에게 프랑스나 미국 미술보다 더 멀리있는 것은 아닐까.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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