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 눈총속 단가 낮추기/추석선물(정치와 돈:6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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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상 축소… 지방특산품·저서 돌리는 의원도(주간연재)
추석명절을 앞둔 여야의원들은 요즈음 추석인사의 수준과 대상범위를 놓고 마음고생을 한층 더하고 있다.
정부당국이 명절때면 늘 검소하게 명절을 보내자고 하는게 관례지만 올해는 사회문제로 떠오른 과소비풍조와 물가불안 등을 이유로 공직자 선물안주고 안받기운동을 입법부측에도 강력히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차례의 지방의회선거 과정에서 공천비리수사로 여야 모두 혼쭐이 난바 있어 과다한 추석선물이 사정당국이나 검찰등에 의해 추적될 경우 의외의 입방아에 오르내릴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위축감이 깔려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총선거가 6개월여 남짓 다가와 추석선물의 대상폭을 늘려야 할 상황이라고 의원들은 이구동성이다.
여야의원들은 선거를 눈앞에 둔 이번 추석에 사정당국의 눈치나 보면서 지구당 당직자를 비롯,후원회원·지역유력인사들에게 명절때면 해오던 성의표시를 하지않으면 당장 욕을 먹을 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야의원들은 우선 경쟁자들의 동향도 살펴보고 총선거에 대비,어느 수준에서 선물을 돌려야할지 적정선을 찾기에 고심해 몇몇의원들은 개인적인 통로를 통해 정부측에 선물허용범위등을 알아보기도 했다는 뒷얘기도 있다.
이러한 사정때문에 민자당고위당직자들은 올해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축소하고 있으며 일반 평의원들은 조직관리차원이나 불우이웃돕기수준에서 예년처럼 하기는 하되 선물액수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을 비롯,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등 당수뇌부도 금년 추석에는 선물을 최소한의 범위로 한정해 돌리기로 결정했다.
김대표는 해마다 추석이나 설날때 부친소유의 어장에서 잡은 멸치선물을 한번도 거르지 않았으나 이번 추석에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비서진들은 전하고 있다. 민자당대표가 된 작년의 경우 각계인사 4천여명에게 트럭 4대분의 멸치선물(1억2천만원상당)을 돌렸다는 후문이다.
김대표는 당후원회원중 기여도가 높은 2백여명에게 성의를 표시한다는 계획이며 당대표 입장에서 양로원등 불우이웃돕기는 관례대로 선물함은 물론이다.
박태준 최고위원도 예년에는 자신의 옛상사나 선배·친지들에게 수천만원 상당의 선물을 했으나 『국민들의 과소비 풍조가 조장되는 사회적분위기를 잡기위해 정치인들이 솔선수범해야한다』며 이번 추석엔 최소한의 선에서 선물 계획을 세우도록 비서진들에게 지시했다는 것.
일반 평의원들의 경우 예년에는 3천만∼5천만원 수준이었으나 올해는 대체로 2천만∼3천만원 선으로 축소조정하고 있지만 의원에 따라 천차만별.
대구지역의 L의원은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지구당당직자·후원회원·반책에 이르기까지 1천5백여명을 대상으로 1만∼2만5천원 상당의 선물(사과·법주등)을 돌리고 중앙당 당직자 및 의원들에게도 인사를 해 약 4천여만원의 경비가 들었으나 올해는 지구당간부와 후원회원등 2백명에게만 성의표시를 할 계획이다. 경비는 1인당 1만∼1만5천원 수준으로 모두 3백만원 미만.
서울의 K의원도 지난해 선물비용(5천만원)의 절반수준에서 선물하기로 했는데 관내 전경 4백명에게 닭1마리씩,구청소속 환경미화원·우편집배원·노인정 등에 과일 2천상자,병원관계자들에게 달걀등 2천5백만원상당의 선물을 돌릴 계획이다.
박준규 국회의장은 지난해 5천여명의 각계인사에게 보냈던 선물을 올해는 자신의 지역구에만 하기로 했으며 이종찬 민자당의원은 비누·치약·옷가지 등을 후원자로부터 협조받아 지역내 양로원 및 영세민 1천명에게 돌리는 선에서 끝낼 생각.
안산 출신의 장경우 의원은 지역내 특산품인 백령도 김·참치 등을 지구당과 중앙당 사무처 요원들에게 해왔으나 올해는 이마저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하고 있으나 결국 범위를 축소할 공산이 짙다는 것. 대부분 농촌출신 의원들도 역시 1천만∼2천만원선에서 특산품을 돌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야당의 경우는 추석선물비용으로 평균 1천만원미만에서 계획하고 있으며 3백만∼5백만원의 초미니급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어 대조적.
우선 김대중 민주당(가칭) 공동대표는 국회경비원·식당직원들에게 김,당사 빌딩관리원에게 양말,소년·소녀가장 80명에게 「격려금」,10여곳의 노인정·양로원에 내의 등을 보낼 계획인데 총비용은 1천만원수준.김공동대표는 해마다 각계 지인 6백여명에게 성의표시 차원의 선물을 전달했으나 이번에는 정부측의 「과소비퇴치」운동 협조의 차원에서 숫자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이기택 공동대표도 지구당 간부 및 조직책,환경미화원 1천여명과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인사 3백50여명을 대상으로 추석선물을 전달할 계획으로 약 2천만원 선에서 「바구니」를 선물로 선택했다는 것.
이에 반해 박석무 의원은 자신이 집필한 『다산기행』『다산산문집』등의 저서를 지역구 주민 5백∼6백여명에게 선물할 계획(3백만원 상당)이고 권노갑 의원은 특산물인 미역·김을 선물로 채택.
야당의원이라 하더라도 일부 중진급·실력파들은 3천만∼5천만원까지 추석선물비용을 쓰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손꼽을 정도며 김원기·허경만·임춘원·홍영기의원등이 실력파로 꼽힌다는 것이 야당가의 얘기다.
지난 광역선거때 공천비리추문에 휘말린 10여명의 의원들은 추문설이후 후원자들이 떨어져 선물비용마련이 다소 어렵다는 소문. 대다수의 평의원들은 친구·친지등 주변 인사들로부터 1백만∼2백만원의 「쌈짓돈」을 끌어 모으기위해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 의원보좌관들의 귀띔이다.
과소비추방운동이 정치인들의 추석 선물돌리기에도 적지않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라고 하겠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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