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풍성한 "가을걷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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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가을 극장가가 한국영화로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등의 흥행호조,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몬트리올영화제 수상, 그리고 활발한 해외로케 소식등이 한가위분위기와 어울려 모처럼 한국영화 붐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임권택감독이 자신의 90번째 작품인 『개벽』을 추석에 발표할 예정이어서 한국영화 붐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개벽』은 임감독이 80년대 영화작업을 결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임감독은 85년 『길소뜸』으로 시작, 『씨받이』 『아다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거치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상했고 국내에서도 『장군의 아들』의 대히트로 흥행감독 자리를 단번에 획득했었다.
그러므로 『개벽』은 이같은 임감독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90년대 첫 예술영화인 점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동학의 2대교주 해월 최시형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 『개벽』은 「시천주 인내천」이란 동학사상을 영화의 주제로 하고 크게는 격동하는 시대상황에 쫓기고, 작게는 관아의 집요한 추적에 쫓기는 한 인간의 절박한 삶을 영화적 재미로 삼고 있다.
임감독은 『해월의 시선을 통해 인간들이 사는 세상과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사이의 모순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자연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반해 인간의 세계는 괴로움의 연속이라는 대조된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에대한 외경을 불러일으키고 이 감정이 자연스럽게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를 조성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개벽』은 철학자 김용옥씨의 각본을 토대로 제작됐는데 임감독과 김씨는 『장군의 아들』 시나리오 구성때 일부 손발을 맞춰본 바 있다.
해월역을 맡은 이덕화는 9개월여 계속된 촬영기간중 다른 출연제외를 거절했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몸무게가 6kg줄었다고 한다.
해월의 첫부인 손씨역은 이혜영이 억척스레 해냈으며 전봉준역은 김명곤이 맡았다.
한편 『개벽』은 영화광고로는 처음으로 88담배 1천2백만갑에 광고를 실어 화제가 되고있다.
가을극장가를 『개벽』과 함께 이끌 또다른 영화는 몬트리올영화제 수상작 『은마는 오지 않는다.』
이혜숙에게 월드스타로의 발판을 마련해준 이 영화는 당초 지난 6월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외화 『늑대와 춤을』의 강세에 밀려 일정을 잡지 못했는데 몬트리올에서의 쾌거로 전화위복의 득을 보게 돼 한국영화흥행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개벽』 『은마…』에 이어 관객들에 선보일 작품은 「흥행의 보증수표」라는 김호선감독의 『사의 찬미』를 필두로 박철수감독의 『데레사의 연인』. 이번 몬트리올수상작을 연출한 장길수감독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등이 있고 배창호감독은 콤비 최인호씨의 시나리오 『천국의 계단』막바지 작업에 열중이다.
한편 상반기 외화호조로 스크린쿼타(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에 쫓긴 중심개봉관들이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걸어야만 하는 상황도 한국영화붐 제고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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