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봉 해프닝 … 이명박·박근혜 감정 골만 깊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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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경선준비기구인 '2007 국민승리위원회'(위원장 김수한)는 15일 "박근혜 전 대표의 법률특보인 정인봉 전 의원이 제출한 이른바 '이명박 도덕성 의혹 자료'는 검증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국민승리위 이사철 대변인은 "자료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5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내용과 당시 김유찬 비서관을 해외로 도피시켜 유죄판결을 받은 것에 관한 자료였다"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선거법 위반과 범인 도피 부분은 이미 수사가 종료돼 유죄 판결까지 받은 사안"이라며 "위원회에서 더 이상 조사하거나 새로운 자료를 얻을 수 없어 검증 절차를 밟지 않고 종료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8일 정 전 의원이 촉발한 '이명박 검증 논란'은 일주일간의 헛소동으로 끝났다. 당초 정 전 의원은 자신이 공개할 내용이 "국민 대다수가 모르고 있으며 이 전 시장이 무척 아프실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흘러간 테이프' 수준이었다. 그가 국민승리위에 전달한 자료는 A4용지 200여 쪽 분량의 서류더미였으나 당시 판결문과 기사 스크랩 등에 불과했다.

김수한 위원장은 자료를 본 뒤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고 맹형규 부위원장은 "황당하다"고 말했다.

국민승리위의 이 전 시장 측 대리인 박형준 의원은 자료를 검토하고 난 뒤 기자들에게 "비극적 희극이다. 새로운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마디했다. 박 전 대표 측 대리인인 김재원 의원도 비공개 회의 때 서류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던지 "허…참"을 연발했다고 한다.

◆악화되는 '빅2' 감정 싸움=이번 사안은 해프닝으로 끝났어도 이 전 시장 측과 박 전 대표 측 간의 대립은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문제가 해프닝으로 끝나자 이 전 시장 측은 이 문제를 더 확대하지 않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이 전 시장은 국민승리위 발표를 보고받고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측근인 정두언 의원도 "할 말이 없다. 이럴수록 당이 더욱 단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분위기는 다르다. 이윤성 의원은 "전형적인 조직적 정치공작으로 정 전 의원의 자작극으로 볼 수 없다. 설 연휴까지 군불 때기를 계속하라는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성권 의원은 "법률특보까지 맡았던 사람인 만큼 박 전 대표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자기들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경환 의원은 "만약 우리가 조직적으로 음해하려 했다면 이런 수준의 자료를 내놓겠느냐"며 "아무 증거도 없이 그런 주장을 편 이 전 시장 측은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무 증거도 없이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 했다.

유승민 의원은 "이 전 시장이 범인에게 돈을 줘서 해외 도피시킨 수법은 대통령 후보로서 큰 하자가 될 수도 있는데 당에서 왜 검증을 하지 않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방미 중인 박 전 대표는 한선교 캠프 대변인을 통해 "정 전 의원과 통화를 해 끝까지 공개를 말렸다"며 이번 일이 자신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당내에선 가뜩이나 악화일로를 걷던 '빅2'(이명박.박근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면전 양상으로 더 틀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일주일간 양측은 "박 전 대표 쪽이 그렇게 나오면 우리도 네거티브에 나설 수밖에 없다"(李측), "이 전 시장이 워낙 약점이 많아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될 것"(朴측)이란 얘기를 공공연히 할 정도로 감정의 바닥을 드러냈다.

외형상 소동은 마무리됐지만 본격적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최상연.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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