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부대에 KGB도 가세/베일 벗은 옐친 호위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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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사불란한 군조직선 “불가사의”/쿠데타 지도부에 심리적 큰 충격/옐친측서 역정보 흘려 KGB와 심리전도
보리스 옐친이 쿠데타를 물리쳤을때 사람들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옐친는 도대체 어데서 탱크부대를 동원할 수 있었을까.
보안군을 포함,모든 부대는 국방장관·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내무장관의 명령을 받는다.
그들은 붉은 군대의 탱크가 옐친을 보호하기 위해 갑자기 모스크바에 나타났을때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크게 놀랐을 것이다. 일사불란한 조직으로 여겨졌던 군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스탈린과 그의 볼셰비키 동료들이 뿌린 씨의 결과였다.
1917년 민선과도정부를 전복해 버린후 공산당은 군의 통수권을 철저히 확보,군사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려 했다.
모든 중요단위부대에 정치장교를 두고 군이 정치적으로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당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결과 군이 정치화 됐다. 소련의 장교는 곧 당료이며 당의 정책결정과 실행에 참여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소련의 엘리트 지도층에서조차 영향력을 상실해 가는 요즘 군장교들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성도 역시 약화되는 추세에 있다. 특히 젊고 똑똑해서 정예부대에 근무하는 장교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게 됐다.
주간 제인스디펜스의 발행자 폴 비버씨는 옐친을 지지한 부대들이 바로 지난 겨울 리투아니아의 비무장 시민들에게 발포하도록 명령을 받았던 그 부대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부대들이 바로 그같은 과거의 명령에 대한 혐오감과 그 명령을 내린 푸고 내무장관에 대한 증오가 옐친을 지지하게된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옐친 지지부대는 타만스카야 방위사단으로 모스크바의 각종 기념행사에 나와 행군하기도 했던 최정예부대였으며 이번에 10대의 T­72탱크를 이끌고 옐친을 지지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왔다. 바로 러시아의회 건물주변에 배치됐던 탱크가 그들이었다.
쿠데타지도부는 그들의 명령하에 있는 군이 또다른 적군을 공격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의 그같은 우려는 9대의 장갑차가 시민에게 투항함으로써 현실로 나타났다.
제106 공정사단의 공수부대원 수백명도 옐친 지지에 가세했다.
물론 이같은 옐친 지지부대는 이론적으로 쿠데타 지도부의 명령아래 있었던 부대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옐친 지지부대들이 모두 정예부대였다는 점에서 쿠데타 지도부에 준 심리적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밖에 KGB의 일부 조직들도 옐친 지지에 가담했다. 이는 대단히 충격적인 일로 KGB는 공산당의 「방패와 검」이라는 조직창설의기원에 따라 그 요원들의 당에 대한 충성도가 사전에 정밀조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데타를 주도했던 KGB가 일부의 이탈외에도 옐친을 보호했던 부대를 공격하지 못한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KGB 소속부대는 정규군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비밀경찰이라는 더러운 일에 연루돼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정규군들에 비해 보수와 상여금에서 더 나은 혜택을 받고 있다. 따라서 만약 KGB 소속부대가 옐친을 보호하고 있던 공수부대를 공격했다면 다른 공수부대원들이 대KGB 반격에 가세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는 곧 진정한 의미의 내란이 발발하게 됨을 의미한다.
쿠데타 주도 세력들이 옐친 지지부대들을 변변히 공격하지 못했던 것은 그같은 내란이 자신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 자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옐친측은 또 KGB에 대해 심리전을 전개하기도 했는데 크류츠코프 의장이 사임했다는 등의 역정보를 적절하게 활용해 KGB를 물리쳤다고 할 수 있다.
옐친의 승리가 확정된 지금도 사람들은 그 드라마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의 사태로 보아 공산당이나 소련군이 지금까지 잘 알려졌던 것처럼 더이상 일사불란한 조직체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 졌다.
바로 이점이 이번 사태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더라도 소련과 세계에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월스트리트저널=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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