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칼럼

싱가포르를 추구하는 캄보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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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실 이웃 베트남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나라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앙코르와트의 자존심을 거론해 봤자 그리스가 파르테논 신전 자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과거지사이고, 지금의 엄연한 현실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인구도 베트남의 8400만 명에 비해 1400만 명밖에 안 된다. 더구나 그 악명 높은 '킬링 필드'로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인구의 4분의 1가량이 몰살당한 나라다.

일본 기자의 말대로 나라를 재건하려 해도 할 사람이 없다는 지적도 무리가 아니다. 사업타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마땅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부담이다. 여기저기 지은 병원이나 학교 건물도 거의가 외국 원조에 의한 것이었다. 자원 또한 특별한 게 없다. 만연된 부패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다. 이런 나라의 미래에 뭘 바라고 투자진출을 도모할 것인가.

그러나 내 눈에 비친 캄보디아는 결코 'No Hope'의 나라가 아니었다. 강한 개발 의욕과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기들 말로도 프놈펜이 한 달이 다르게 변하고 있다고 했다. 현지의 대사관 직원들에 따르면 교통난이 생겨날 정도로 자동차가 급작스레 늘고 있다는 것이다. 호텔마다 외국 비즈니스맨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변변한 제조업 공장 하나 없는 나라인데도 웬만하면 모두들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다녔다.

운좋게도 캄보디아 정부의 몇몇 요인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로 치면 경제기획원.재무부 등의 실력자들이었다. 삼성 같은 대표기업 총수와 재계 거물급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주로 모스크바나 오스트레일리아 유학파들이었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그들이 궁리하는 전략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이웃 대국인 중국과 베트남을 통해 흘러들어 오는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1차 목표였다. 전략의 요체는 투자 여건이나 인건비 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에게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나은 점이 뭐냐고 물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를 따지지만 우리는 그런 것 전혀 안 따집니다. 사업만 잘되면 됩니다. 외국자본이 은행을 세우는 데에도 우리가 훨씬 쉬울 겁니다. 땅을 사는 것도 사실상 허용합니다. 캄보디아 국민들에게만 토지 매입을 허용합니다만, 이중 국적을 허용하니까 국적과 땅을 함께 사면 됩니다."

흥미를 끌었던 점은 정부 관료든 기업이든 간에 이야기 도중에 자주 싱가포르를 들먹인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의 경제력이나 인구.자원 등으로는 주변국에 비해 열세임이 틀림없으나 캄보디아가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인도차이나 반도의 허브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자기네 형편에는 싱가포르의 개방정책, 경제 제일주의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게 가장 유효하다는 판단이다. 아무튼 베트남 경제가 힘찬 비상을 시작하는 상황이니만큼 더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쓰겠다는 캄보디아에도 적지 않은 파급이 미칠 게 틀림없다. 훈센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싱가포르를 추구하겠다는 캄보디아의 꿈,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