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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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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떤 일이 벌어지도록 시간이 예정됐다는 것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좋은 일은 시간이 다가올수록 손꼽아 기다린다. 생일이나 명절, 승진 예정일, 출산 예정일 등이 그렇다. 그러나 불행하고 불길한 일이 일어나도록 예정됐다면 그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는 게 고통이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 순간까지의 시간을 따지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정해진 시점까지 남은 시간을 셈하는 것을 '카운트다운(Countdown)'이라고 한다. 원래는 미사일.인공위성.우주선 등의 로켓을 발사할 때 그 준비작업을 정확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고안된 말이다. 거대한 로켓을 발사하려면 수많은 복잡한 준비작업이 필요한데 그 절차를 빈틈없이 진행하기 위해 발사 예정시각을 기준으로 해서 시간을 거꾸로 읽어 가는 것이다. 로켓의 카운트다운은 초(秒) 단위로 세기 때문에 '초읽기'라고도 한다. 만약 한 단계에서라도 조그만 이상이 발견되면 자동적으로 카운트다운이 중지되고 발사가 취소된다.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10초 전의 최종 카운트다운은 초조와 긴장의 시간으로 비장한 기운마저 감돈다. "10, 9, 8, …, 2, 1, 발사!" 발사가 성공하면 지켜보는 이들은 안도감 속에 환호한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카운트다운도 있다. 매년 말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신년맞이 카운트다운이다. 가는 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반기는 마지막 10초를 한목소리로 센다. 신년 카운트다운은 새해라는 인위적인 시간의 분절에 벅찬 감동과 극적인 일체감을 불어넣는 일종의 국민적 의식이 됐다.

요즘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퇴임일까지 남은 날짜를 세는 '부시 카운트다운 시계'가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물론 부시를 싫어하는 민주당 쪽 인사들 사이에 인기다. 이 시계에는 부시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우리의 국가적 악몽이 곧 끝난다(Our national nightmare will soon be over)'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죽 부시 대통령이 못마땅하면 퇴임일을 손꼽아 기다릴까마는 2년도 더 남은 임기 동안 카운트다운 시계를 들여다보는 게 과연 즐거움일지 아니면 고통일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 1년여 남은 노무현 대통령의 카운트다운 시계가 나왔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반면 열 달여 남은 대선 날짜까지의 카운트다운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운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긍정적인 것 같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