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게임 앞두고 민심 아직 불안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올해 초 한 중앙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12월 대선구도가 양자대결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비중으로 보았을 때 이것은 범여권에 던지는 가이드라인의 성격이 짙다.

대선은 정당과 인물을 놓고 벌이는 각축전이다. 현재 범여권에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없다. 야권 주자들은 이미 링 위에 올라 몸을 풀고 있는데 여권은 사수파.탈당파.잔류파 등 분열의 길로 치닫고 있다. 유권자도 덩달아 혼란 상태다. 이런 혼란 현상은 고건 전 총리 불출마 선언 이후 더욱 확산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연합뉴스)에선 유권자의 절반가량이 야권 1.2위 이명박.박근혜 예비후보가 결국 갈라설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잘 찢어지지 않는 정당이다. 또 '범여권 후보 대선 적합도'에서는 정동영 전 의장을 제치고 한나라당 빅3 중 한 명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위다. 자기 집에 없으면 남의 집에서 꾸어서라도 오라는 이상심리다. 현실적으로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로 이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앙일보 조사에서 전체 유권자의 73%, 호남 유권자의 거의 40%가 한나라당 빅3를 지지하는 결과도 나왔다. 고건 전 총리 불출마 선언 이후 범여권 주자들의 지지율은 전체 유권자의 5% 미만 수준이다. 이 결과를 놓고 서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과연 이 응답이 얼마나 본심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 현상이 지속될지에 대해. 대선 관련 민심이 극도로 불안정함을 보여 주는 현상이다.

2002년 대선에서 현 여권은 호남의 전폭 지원을 받은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를 내세워 표심을 갈랐다. 양자대결구도였다. 선거구도가 확정된 것은 막바지에 이르러서였다. 단일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이전까지의 수많은 여론조사들은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이상기류는 무언가 '올 것'이 '덜 온 것'에 대한 유권자의 조바심의 반영이다. 중앙일보 최근 조사는 지지 후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 비율이 절반 이상(52.8%)임을 보여 준다. 특히 호남 유권자의 66.6%, 20대 전체 63.6%다. 이는 향후 대선구도가 변하면 '호남의 회귀'와 다시 불붙을 수도 있는 수도권 세대전이 관전 포인트임을 암시한다.

올해 대선에서 또 한 번 양자 대결구도를 보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약 범여권이 그것에 성공한다면 현재의 지지율 조사는 그야말로 휴지 더미다. 언제쯤 본격적 게임이 시작될까. 요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대선 관련 민심의 불안정성은 그 뚜껑을 빨리 열어 달라는 사인이 아닐까.

안부근 디오피니언 소장

◆안부근 소장=1987년 이후 네 번의 대통령 선거를 정확히 예측했던 과학적 정치여론조사 1세대로 꼽힌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갤럽 이사와 미디어리서치 전무, 중앙일보 여론조사전문위원을 거쳐 현재 디오피니언 소장이다. 저서로 '보이는 선거 감춰진 선거판'(1996)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