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서울 퇴계로 2가)|내실 같은 분위기…8가지「죽」메뉴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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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도심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끔 점심식사가 고민일 때가 많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무엇으로 하지, 망실이면서 머뭇거리게 된다. 근처에 있는 식당이라면 저의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메뉴쯤이야 박사처럼 아는 터라 선뜻 내키지 않는다.
어느 날 이였던가 이런 표정을 하면서 옆 동료에게 구원의 눈빛을 던졌더니 새로 발굴한 기막힌 집이 있다고 큰소리치며 안내 해 준 곳이 있다. 바로 퇴계로 세종호텔 옆「서원」이라는「죽」전문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같이 나의 직장 가까이 코 닿을 곳에 이 맛 좋은 집이 숨어 있을 줄이야 단골이 아니고서야 무심히 스쳐 지나기 십상인 땅 밑에 자리한 열 평 남짓한 공간이였다.
온화하고 정갈한 기품이 담겨져 있는 내실 같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한마디로 뜻 있는 사람이라면 첫눈에 반할 것이라고 소개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주방의 청결함, 종업원들의 인사성, 그리고 카운터의 고운 눈빛과 다소곳한 표정, 3박자가 있어 그렇고 여기가 좋다고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수수해서 더욱 그렇다.
소시쩍 할머니가 쑤어주신 입맛 없을 때 떠먹던 흰죽, 동짓날 가족끼리 행운을 빌며 퍼먹던 팥죽을 드는 노신사 모습, 건강과 미용에 좋다는 숙녀들. 어제 저녁 과음을 탓하며 속 풀이하는 젊은 회사원들의 수저소리가 음악 같다.
버섯굴죽·야채죽·닭죽·전복죽·인삼죽·깨죽·잣죽·새우죽 여덟 가지 메뉴가 사람 따라, 맛 따라 식탁마다 다르다. 담박하고 상큼하며, 연하다고 이구동성 혀로 말한다.
물김치·배추김치·고추무침·콩나물무침·젓갈 등 밑반찬 역시「서원」의 명품이다. 적당한 양, 깔끔하게 차려진 모양새가 죽과 어울리면 한층 맛이 난다. 거기에다 후식으로 등장하는 과일즙·야채즙·인삼즙은 신선해 먹을수록 만족감이 태산이 된다.
한번쯤인가, 주인에게「서원」자랑거리가 무엇인가를 불어본적이 있다.
주인은 소박한 표정으로『보양과 편안함이지요』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아마 영양이 듬뿍 담긴 죽을 만들고, 가정 같은 분위기라는 뜻일 것이다.
한 모서리 작은 공간에는 독서거리까지 배려한 정성이 엿보인다,
내가 첫눈에 반해 끊임없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벌써「서원」의 선전담당이 된 것일까.
죽의 가격은 3천∼5천원. 77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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