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여직원 호칭 "○○○씨 라고 불러주세요"|국립 국어연, 기업체 여사원 대상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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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D방직 회사에 4년째 근무하는 이모계장 (여·28)은 직장 남자 동료·상사들이 자신을 「이 계장」 아닌 「미스 리」로 부르는데 대해 크게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끼게됨은 물론 부하 직원·거래처 사람들 앞에서 입장이 난처해져 업무 수행에까지 지장을 받고 있다는게 이씨의 얘기.
이같이 직장 내 여사원 호칭 문제로 곤란함을 겪고 있는 것은 비단 이씨만의 경우는 아니다.
문화부 산하 국립국어연구원이 지난 6월 중순 각 기업체 여사원 50여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중 대다수가 「미스○」 「○양」이라는 남녀 차별적 호칭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 응답자들은 남자 동료들이 미스터 ○·○군 등으로 불리지 않는 상황에서 유독 여사원들에게만 하대하는 투의 미스 ○·○양이라는 호칭이 사용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국립국어연구원 이근용 연구원은 『미스○·○양이라는 호칭이 외래어인데다 남녀 차별적 관념이 짙게 배어 있으므로 여사원들도 남자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O○○씨로 이름을 부르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구원 측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직급이 없는 여사원들은 ○○○씨로 부르도록 하자는 호칭 지칭을 마련, 발표한 바도 있다.
이처럼 직장 내 남녀 차별적 호칭 문제에 대한 문제 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주)금성사에서는 수년 전부터 「여직원 이름 부르기」가 사원들간에 조용한 운동으로 자리잡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주)금성사에서 사내 여직원에 대한 호칭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7년 무렵. 노사 분규 등을 통해 여사원에 대한 전반적 처우가 개선되면서 여자 동료·부하 직원들을 미스 ○·○양이 아니라 남자 사원과 마찬가지로 ○○○씨로 부르자는 조심스런 움직임이 사내 곳곳에 나타났다.
부서·사업장 별로 회람 공문이 돈 것을 비롯, 사원간에 서로의 이름 끝에 「씨」자를 붙인 호칭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노력들이 진행됐다.
이 같은 사내 분위기를 반영해 88년부터는 신입 사원에 대한 「직장 예절」 교육 과정에 「여사원들에 대한 호칭 예절」 부분이 첨가됐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직장 내 여직원 호칭 문제와 관련, 조순경 교수 (이대 대학원 여성학과)는 『미스 ○이라든가 ○양은 대개 나이 어린 미혼 여성에게 쓰이는 호칭인데 한국 직장들에선 기혼 여성·직급 있는 여성에게까지 마구 쓰여 여사원들의 위치를 남자 사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하시키는 부정적 기능을 해왔다』고 한다. 따라서 직장 내에서 남녀 사원들이 동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올바른 호칭 문화부터 정착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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