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불안한 도상연습”(자본시장 개방되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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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환율·통화 급격한 변화 맞을듯/급속히 돈들어 올땐 대응 한계
그간 한국경제의 「탯줄」은 수출이었다. 그러나 금융·보험의 개방에 이은 내년부터의 자본시장 개방은 이제 우리 경제가 세계의 「상품시장」만이 아닌 「자본시장」과도 직접 연결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는 『외국인이 여의도 증시에서 얼마를 챙겼다』가 문제가 아니라 환율이나 금리가 서서히 우리 손을 벗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미 금융·보험·자본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방의 흐름을 같이 타본다.<편집자 주>
「1992년 6월9일 화요일.
한국은행은 이날 하루에만 약 3억달러의 외화를 사들이며 긴급히 외환시장에 개입,며칠째 계속되고 있는 원화의 급격한 절상을 막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합상사들은 연초에 짜놓았던 수출계획을 조정하는 작업에 이미 착수했고 제조업체들은 투자계획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자금부는 해외부문에서의 통화가 계속 터져나오자 다시 전통적인 방법대로 은행창구를 죄기 시작했고 증시는 다시 맥을 못추고 1년반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이상은 내년 상반기중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바람직스럽지 못한 시나리오중의 하나다.
물론 위와는 정 반대로 아주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도 있다. 처음 열린 한국의 증권시장에 대해 외국의 투자가들이 매우 신중한 자세를 보여 급격한 자금의 유입이 없이 환율이나 통화가 큰 흔들림을 보이지 않고 무역수지 등에 따라 어느정도의 예측 가능한 범위안에서 움직여주는 것이다. 또 이 경우 증시도 큰 흔들림 없이 가주면서 평탄한 산업자금의 유입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나라 안팎의 어느 누구도 한국 자본시장개방의 「도상연습」을 미리 해볼 수가 없다는데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범수 박사는 코리아 펀드등 기존의 외구기관투자가 지난 90년말에 한국증시에 투자하고 있던 실적 등을 준거로 「개방초기」에 약 1조∼2조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추정 정했었다.
그러나 「개방초기」가 과연 어느정도의 기간일 것인가에 대해,다시말해 그 정도의 자금이 어느만큼 빨리 들어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추산하지 못했다.
한편 직접 시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잡아보는 얼추계산은 좀 다르다.
『만일 상장된 6백70개 종목 전체에 대해 투자를 일으키는 회사가 있다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이번에 비록 영업허가는 받지 못했지만 일본의 자본이 매우 공격적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시티증권 S지점장),『어느 기관투자가고 국제적인 포트폴리오가 있는 법이므로 내년의 개방초기에 다소 급격한 자금유입이 있을 것이다. 외국의 기관투자가가 빈번히 자금을 넣었다 뺏다하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우리의 투자관행으로 보아 외국자본이 들어오면 이때다 싶어 두두려 패는 투자가가 많을 것 같다는 점이다』(S대기업 P자금과장),『환율과 통화의 급격한 충격을 우려하는데 외채를 들여오거나 상환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그 충격을 조절할 수 있다』(KDI 최범수 박사),『지난 88년의 경험에서도 나타났듯 민간기업들은 외자를 갚지 않으려 할것이요,이 경우 정부나 국영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쿠션」은 상상외로 그 여지가 적다』(한은 K조사역).
이같은 분석들은 다 옳을 수도 또 다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두가지 사실은 첫째 자본시장은 열어봐야 그 결과를 비로소 알 수 있다는 것과,둘째 그 결과를 미리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외국의 증권사·은행·보험사등 금융기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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