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민족문학작가회의 총회서 무슨 일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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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7일 열린 민족문학작가회의 20차 정기총회는 명칭 변경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민족문학'이란 이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일부 회원의 고성도 있었지만, 쟁점은 그게 아니었다. 30년 전부터 한국문단의 진보진영을 이끌어온 고은.백낙청.황석영.현기영 등은 이미 대의(大意)에 동참한 차였다. 작가회의가 이름을 바꾸면서 민족문학의 깃발을 내리려 했다면, 평생을 작가회의와 함께한 소위 민주화 동지들이 먼저 뜯어말렸을 터였다.

단체 이름에서 '민족문학' 네 글자를 들어내지 못한 이유는 사실 딴 데 있었다. 개정안은 일반 회원,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회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무국이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강행한다는 오해가 싹 텄고, 격분한 지방 회원들이 일종의 '상경 투쟁'을 벌여 "밀실 행정" "독재적 안건"이라고 따지고 나선 것이었다. 총회에 참석한 140명 중, 지방 회원 대부분은 "명칭 개정안을 언론 보도로 먼저 알았다"며 일제히 성토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꼬였을까. 일부 회원의 말마따나 사무국은 밀실 행정을 도모한 것일까. 사태의 본질은 전혀 엉뚱한 데 있다는 걸 암시하는 단서가, 명칭 변경안 결정이 연기된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 재정위원회가 제출한 '2006년도 결산보고서를 보면서 회원 여러분께 드리는 긴급 제언'이란 문건이다.

문건은 작가회의의 궁핍한 사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기존에 적립된 기금은 이미 고갈됐고, 앞으로 작가회의는 오로지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해야 할 형편이었다. 지난해 작가회의가 쓴 돈은 6억여 원. 그러나 회비 납부율은 35% 수준(2700여만 원)이었다. 500만 원을 쾌척한 박완서씨 등 문단 원로의 도움을 다 합쳐도 회비 납부율은 54%에 그쳤다.

그래서 작가회의는 올해부터 사무국을 축소 운영하기로 했다. 현재 6명인 사무국 상근인원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상근인원 6명의 인건비는 총 1억2800여만 원. 1인당 월 200만 원이 안 되는 수입이다. 이마저도 더 줄이겠다고 총회는 이날 결의했다.

회원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백낙청 상임고문 등 원로들은 사무국을 비롯한 집행부의 어설픈 행정력을 질책했다. 시대 흐름에 조응하기 위해 민족문학 포기라는 오해를 감수하면서도 단체 이름을 바꾸려던 시도는, 공식적으로 집행부의 허술한 일처리로 무산된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런 건 아닌 듯싶다. 총회 막바지, 비장한 얼굴로 김형수 사무총장이 단상에 올랐다. 그는 작가회의의 안타까운 오늘을 격앙된 어조로 털어놨다.

"3일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집행부 모두가 밤샘을 하며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주 좋지 않습니다. 묻겠습니다. 지난해 12월 이사회에서 결의했던 사항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각 지회.지부가 전국의 회원들에게 개정안을 알리기로 했던 건 또 어떻게 된 것입니까. 오늘의 결정은 집행부를 불신임한 것입니다."

1974년 11월 18일 의사회관(지금의 교보빌딩). 염무웅이 작성한 '문학인 101인' 선언을 고은이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언문을 다 읽기도 전에 고은이 체포된다. 나머지 부분은 황석영이 겨우 낭독한다. 작가회의 전신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그렇게 창립됐다. 그때 고은은 40세, 염무웅은 33세, 황석영은 겨우 서른 살이었다.

그로부터 33년이 흘렀다. 작가회의가 이름을 바꾸려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젊은 세대에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하나 27일 총회에 참석한 140명 중 30대는 열 명이 채 안됐다. 이 중 대부분은, 그날 진탕 욕을 먹은 집행부였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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