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유도천재 최용신 재기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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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인가."

최용신(25.마사회)이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다. 보성고교 시절 최용신의 유도복은 수퍼맨의 망토 같았다. 평소 차분한 성격이지만 유도복만 입으면 사자 같은 투지와 곰 같은 힘, 여우 같은 지략을 매트에 쏟아냈다. 무적이었다. 자신의 체급이었던 71㎏급뿐 아니라 1백㎏이 넘는 선수들과 겨루는 무제한급 경기에서도 우승을 독차지했다. 상대는 한판패만 당하지 않으려 피해다녔지만 제대로 1분을 버티는 상대는 없었다. 최용신은 고교시절 2백전 가까운 경기를 치르면서 단 1패만을 당했다.

당시 보성고 감독이던 권성세 대표팀 감독은 "실력이 워낙 뛰어나 1학년 때부터 유도회 추천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다. 1학년 때 7위, 3학년 때는 2위를 한 대단한 선수였다"고 말한다. 97년 용인대에 입학한 최용신은 엄청난 기대를 모으며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최용신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에서 체급 최강자였던 나카무라 겐조(일본)는 꺾었지만 번번이 복병에게 덜미가 잡혔다. 운도 없었고, 실력도 정체된 상태였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6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유도계에서는 "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고 평했다.

그런 그가 요즘 다시 힘을 내고 있다. '한판승의 달인'으로 불리며 한국의 에이스로 떠오른 이원희(용인대) 때문이다. 이원희는 최용신의 보성중.고-용인대 3년 후배로 화려했던 최용신을 보면서 꿈을 키운 선수다.

올 초 최용신이 부상으로 해외 전지훈련에 불참하자 대타로 나가 기량이 급성장했다. 최용신은 올해 대표선발전에서 이원희에게 연속 세 차례 졌고, 이원희는 세계선수권 등 국내외 8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후배의 활약을 보면서 최용신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있다. 이대로 물러날 것인가, 새롭게 꽃을 피울 것인가.

두 선수는 12월 초 코리아오픈에서 다시 격돌할 예정이다. 최용신이 이기고 우승한다면 2000년부터 대회 4연패의 업적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이원희는 지금 최용신의 화려한 과거를 완전히 지워버린 상태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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