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말 뒤집은 미니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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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대선자금을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또 번복했다. 배기선 깨끗한정치실천특위 위원장은 17일 "한나라당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특검으로 공세를 벌이는 마당에 우리만 대선자금 내역을 밝히면 역공을 당할 것이 뻔하다"는 이유를 댔다. 이평수 공보실장이 나흘 전 "다음주 초(17일) 대선자금을 공개하겠다"고 한 공식 발표를 뒤집은 것이다.

대선자금 발표를 놓고 열린우리당이 오락가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상수 의원은 지난 3일에도 "우리부터 대선자금을 자발적으로 고백할 생각이 있다"며 "2~3일 내에 대선자금 규모가 드러날 것"이라고 했었다. 당시 李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내역을 공개하는 문제를 상의까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李의원은 며칠 뒤 "검찰 조사를 한차례 더 받고 나서 공개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쯤되면 이상수 의원과 열린우리당은 말을 바꿨다기보다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누가 자기네들한테 대선자금을 공개하라 했는가. 스스로 공개하겠다고 해 놓고 뒤집으니 하는 소리다. 약속을 두번이나 뒤집는 가운데 李의원이 엉뚱하게 끌어들인 盧대통령도 우습게 됐다.

지난 7월 이후 열린우리당이 밝힌 기업 후원금 액수나 대선자금 관리 계좌 수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고 있다. 해명은커녕 의혹만 커진다. 배기선 위원장은 약속을 번복하며 "1차 대선자금 내역 공개 때 상당 부분을 밝혔고 특별한 게 없다"며 "한나라당은 10리도 안 갔는데 우리만 1백리를 더 간 것 아니냐"는 변명을 덧붙였다. 이런 얘기는 '기존 정치와는 다른 정치를 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의 창당 명분마저 뒤엎는 것처럼 보였다.

신용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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