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인사의 매직비리로 규정/1차 사법심리 끝난 수서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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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소사실에 국한된 법원심리/의혹규명보다 양형에 더 치중
수서사건 관련 피고인 9명에 대한 1심 재판이 국민들의 의혹과 궁금증을 풀지 못한채 5일 선고를 마침으로써 1차 사법심판을 마무리 했다.
정·경·관이 두루 연루된 구조적 비리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법원이 수서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어느 정도 규명하리라는 기대를 가졌으나 재판부는 이 사건을 일부 지도급 인사들의 「일과성 독직비리」로 규정하는 시각을 드러냈다.
따라서 재판결과가 이 사건에 모아졌던 국민적 관심과는 동떨어져 다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재판부가 「불고불리」의 원칙에 따라 공소사실만의 유·무죄 판단에 충실한 공판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고 국회의원 등의 관행화된 금품수수라도 직무관련성만 인정되면 불법이라는 죄의식을 심어준 점에서 정치지도자들의 도덕성회복을 촉구하는 효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의 성격에 대해 『피고들과 정회장과의 관계,돈받은 시기,액수,피고인들의 지위를 감안하면 이 돈이 택지분양 과정에서 건네진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명백히 뇌물에 해당된다』며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공소사실의 단일성 및 동일성 범위내에서 증거조사의 직권주의를 적극 활용,수서사건의 본질을 밝히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데서 사법심판의 역사성과 정의실현이라는 법의 이상을 구현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법원이 공소사실을 벗어난 의혹을 해소할 의무는 없지만 이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의미를 인식했다면 비리의 뿌리를 캐내는데 좀더 전진적인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는게 중론이다.
수서비리의 「외압」 규명과 관련,정부와 민자당의 택지분양 결정에 국회가 들러리역할만 했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한 변호인측이 증인으로 신청한 민자당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홍성철 전청와대비서실장,김종인 경제수석 등 19명에 대해 「공소사실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박세직 전서울시장과 이상희 전건설부장관만을 채택한데서 이 사건을 처리하려는 재판부의 방향을 드러냈다.
결국 민자당 및 청와대·정부관계자들의 수서사건 개입여부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내내 관심을 끌었으나 공소사실에 한정된 심리결과로 오히려 이들이 법률적·도덕적으로 면죄부를 받는 꼴이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판부는 재판의 양대기능인 실체적 진실발견과 양형 가운데 양형부분에 심리를 집중했다는 지적이다.
우선 수뢰액수가 2억∼4억6천만원으로 고액인 이원배·이태섭 의원과 장병조 전청와대비서관에게는 예상대로 실형이 선고됐다. 이는 법정형량(징역 10년이상)이 높은데다 수서택지 공급을 주도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판부로서는 법정형 이하를 선고함으로써 「처벌과 관용」의 절충적인 방법을 취했다.
특히 정 전비서관의 경우 범죄의 사실관계마저 부인한데다 뚜렷한 물증도 없어 재판부 판단이 주목됐으나 결국 수사과정에서의 장 전비서관 진술의 임의성과 신빙성을 받아들여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엄단의지를 나타냈다.
3천만원씩을 받아 징역 5년씩이 구형된 김동주·오용운 의원의 실형여부도 관심을 끌었으나 공직자로서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석방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선고를 앞두고 이들 두 의원의 형량을 놓고 매우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 정치풍토의 현실과 법정태도 등을 감안,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태식 의원의 집행유예 선고는 적용죄명인 공갈죄의 법정형이 비교적 낮아 이미 에견됐던 일.
또 장 전비서관측이 받은 돈을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경합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공소사실에 나타난 금품수수 경위와 시기 등을 종합할때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이라는 같은 목적을 위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포괄일제」의 법리에 따른 뇌물임이 명백해 엄단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재판부가 한보 정회장에게 집행유예선고를 한 것은 고령과 신병에 시달린다는 정상을 참작했으며 뇌물사건에 있어 공여자는 불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해온 「관행」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들 대부분이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검찰도 모두 항소할 것이 분명해 항소심 결과가 주목된다. 그러나 구속피고인 항소심 만기가 4개월이므로 법원은 실형 3명과 집행유예 6명을 분리심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실형이 선고된 3명도 항소심 과정에서 보석 등으로 나올 여지가 있는데다 설사 실형이 선고됐다 하더라도 대법원 확정판결은 내년 4월까지 내려지게돼 의원들의 임기(92년 4월24일)는 거의 채우리라는 관측이다.
항소심에서 변호인들은 1심에서 채택되지 않았던 증인들을 다시 신청할 것으로 보여 ▲수서택지공급을 가능케했던 외압의 실체 ▲청와대와 민자당의 고위층 관련여부 ▲한보그룹 비자금행방 ▲검찰의 축소수사여부 등 「수서의혹」 시비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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