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법규없어 부실조장/불량레미콘 단속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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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적용대상 고시품목서 누락/공산품 품질관리법/건축자재서 제외돼 손못써/주택 건설 촉진법
불량레미콘 공급으로 인한 신도시 아파트 부실공사가 큰 파문을 일으키며 확산되고 있으나 불량레미콘에 대한 형사처벌 법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각종 공사에서의 안전도 문제에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검찰은 문제가 된 진성레미콘측의 불량레미콘공급과 관련,그동안 경위 파악과 함께 법률적인 검토를 한 결과 불량레미콘 공급행위가 행정조치 사항일뿐 형사처벌대상은 되지 않는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검찰은 레미콘등 건축자재 공급과정에서의 전반적인 불법 개입여부에 대해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 불량레미콘 공급사건과 관련돼 적용이 검토될 수 있는 법규는 공산품 품질관리법 주택건설 촉진법,사기죄등 3가지.
우선 사기죄의 경우 진성레미콘측이 불법 이득을 취할 의도로 시공업체를 속여 불량레미콘을 납품한 경우 성립하게 되나 컴퓨터조작이 미숙한 직원에 의해 실수로 불량배합이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져 사기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
다만 진성레미콘측이 지난달 8,9일 이틀간 신도시 6개 건설업체에 불량레미콘을 공급한 사실을 다음날 컴퓨터 자료분석으로 밝혀 내고도 열흘 이상이 지난 22일 건설업체에 통보한 사실로 미루어 적어도 은폐기도가 있었다고 보고 고의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진성측이 레미콘을 만들면서 시멘트·자갈·모래·물 등의 배합비율을 엉터리로 했을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한지를 검토했으나 현행 법규상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공산품 품질관리법은 공업진흥청장이 고시한 공산품이 품질검사 기준에 어긋날 경우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으나 레미콘은 고시품목에 들어있지 않아 아예 이 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더욱이 레미콘 배합비율은 확일적이 아니고 건물분위별마다 달라 혼합비 조작여부를 일률적인 기준으로 문제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량레미콘을 만들었을 경우 행정당국이 시정명령을 내리는등 행정조치만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KS마크 획득업체인 진성레미콘에 대해 공업진흥청이 KS지정을 취소한 것이 행정조치의 대표적인 예다.
경기도경이 지난해 KS마크를 받고도 불량레미콘을 생산한 6개업체를 적발했으나 형사처벌을 하지 못하고 KS지정을 취소토록 통보한데 그친 것도 이러한 법률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지난 4월 대검도 레미콘생산업체에 대해 내사를 벌였으나 법이 뒷받침되지 않아 유야무야 됐었다.
또 주택건설촉진법은 불량건축자재를 사용했을 때는 처벌토록 하고 있으나 레미콘은 「건축자재」에 포함되지 않아 이 법 역시 적용여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건물이 완공된후 불량건축물임이 드러나면 시공업자 등이 업무상과실로 처벌되나 이번에는 건설과정에서 불량이 발견됐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부실공사에 대한 수사는 불량레미콘생산 자체의 위법여부 보다는 업체의 다른 비리등 부수적인 범죄 추적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안양경찰서가 불량레미콘 발견사실을 뒤늦게 통보한 것과 관련,진성레미콘에 대해 시공업체의 정상적인 공사추진을 지연시켰다며 형법상 업무방해혐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에 따라 검찰은 현재 진행중인 감사원 등의 감사결과 진성측의 자재구입과정에서의 기록 조작 및 레미콘공급과정의 금품거래,행정기관의 감독소홀등 형사적인 비리가 밝혀져 고발돼오면 수사에 나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이 건설업계의 구조적인 비리가 표출돼 일어난 것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준 점을 감안,좀더 적극적으로 나서 바로잡아야 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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