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조기유학돋보기] 미국교사, 공사 구분 철저한 직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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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라고는 ABC밖에 모르니 선생님 말소리가 자장가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멍하니 있다가 지루하니까 밖도 쳐다보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아픈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는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 홀로 앉아있는 아이의 처지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들은 처음에는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영어만 잘한다면 '당신들은 전혀 모르는 외국어로 진행하는 세미나에서 통역도 없이 하루 종일 앉아 있어본 경험이 있느냐? 그게 얼마나 지루하고 괴로운 일인지 아느냐?'고 따져 묻겠는데, 당황하니까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전학 오는 지역의 교사들은 우리 아이 같은 경우를 많이 접하기 때문에 이해를 더 잘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던 지역은 영어를 모르는 채 전학 오는 아이들이 아주 드문 곳이어서 그런지 참고 감싸 안아주려는 교사들의 노력이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죽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맨 뒤에 혼자 앉혔겠는가.

조금 기다려달라고,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고 교사들에게 한참을 설명하자 내 태도가 조금 불쌍했던지, 친구도 사귀게 해주고 자리도 앞으로 좀 옮겨 주겠다며 그때에서야 배려를 하는 듯했다. 면담을 끝내고 뒤돌아 나오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는 미국 학교 하면 선생님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재미있게 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린다. 실제로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비교적 친절하게 잘 대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겪어볼수록 미국교사는 공사를 너무나 철저히 구분하는 직업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교육받는다는 것, 정말 산 넘어 산이었다.

김희경 '죽도 밥도 안 된 조기 유학' 저자·브레인컴퍼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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