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비번일 휴식 되찾아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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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강경대군 사건이 발생하자 일선 경찰관들은 저마다 긴장된 모습으로 매스컴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건 전말이야 어찌됐든 일선 경찰관들에겐 지난날 박종철군 사건처럼 경찰 전체이미지에 가해지는 충격과 이로 인해 경찰관 개개인이 직업 때문에 받는 대외적인 따가운 시선이 제일 견디기 힘든 부담이기 때문이다.
안응모 전 내무부장관은 취임 후 경찰조직에 한가지 획기적인(?)시책을 제시하고 임기동안 잘 이행해 주었었다.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일반인들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를 「비번자 휴식보장」이란 것이다.
이는 안 전 장관이 경찰출신이기 때문인지 경찰의 속성을 잘 파악한 설득력 있는 조치로 일선 말단 경찰관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모두 말못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가장 큰 애로사항을 장관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비번 날 쉬게만 해준다면 당번 날에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며 숨 돌릴 틈도 없이 짜여진 근무시간표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열심히 근무했다. 단지 쉬는 날 쉬게 한다는 조치 하나가 대단한 사기진작을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나 강군 사건이 터지고 내무부장관이 바뀐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비번자 동원은 일상화되었고 일선 경찰관들의 불만은 고조되어 서로 모여서는 우리도 빨리 노조를 만들자는 농담 아닌 농담이 열띠게 오가고 있을 정도다. 모두 좌절된 모습, 의욕 잃은 표정으로 흡사 로봇처럼 움직이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일선 파출소 근무자들은 격일제 근무를 한다. 하루 8시간 기준으로 근무시간을 계산할 때 24시간근무 24시간 휴식의 격일제 근무는 하루 4시간을 더 초과하는 격무인 셈이다. 게다가 심할 때는 매일같이 비번 날에 소집하여 보통 14시간 이상의 무보수근무를 추가로 시키고 있으니 엄청난 중노동이요, 부당한 처우다.
비번 날에 휴식보장 후 당번 날에 충실한 근무를 요구해야 한다는 논리는 서울대 김해동 교수의 「공무원의 보수 등 복지대책을 현실화 한 뒤에 부정부패를 논하고 처벌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으로 특히 경찰공무원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고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다.
전임장관 재직 때보다 시국이 더 혼란해진 것도 아니고 경찰관 수가 갑자기 줄어든 것도 아닐텐데 새 장관이 다시 비번자 동원을 지시한 것일까. 장관이 바뀌었다고 전체 공무원에 취해졌던 근무여건 개선조치가 철회되고 더 악조건이 된다면 누가 정부를 신뢰하고 따를 것인가.
비록 공개적으로 의사표출을 못하는 구성원들이지만 계속되는 격무의 요구, 처우의 불충분 등으로 인해 공무원조직, 특히 경찰조직에 「야당파」가 유독 많다는 사실을 정부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경찰관은 1년 중 거의 모두 비상근무다. 연말 연초·명절·각종 종교기념일·행락철·휴가철 등…. 경찰제복을 입은 지 몇 년 동안 집안 친지들의 경조사 등에 참석하지 못해 이들로부터 소외된 지 오래고 일찍 집에 가는 날엔 이제 겨우 제 어미를 알아보는 생후6개월짜리 딸아이가 나를 보면 낯선 사람 대하듯 자지러지게 운다.
일개 말단 공무원이 불평이나 하려고 펜을 든 건 아니다. 일국의 국무총리가 극소수 학생들에 의해 서울 한복판에서 봉변당했는데 집권여당마저 정치적인 계산이나 하고 앉았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참으로 암담할 뿐이라는 생각이다. 권오동<서울 양천구 신월 2동·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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