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문지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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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에 대해 상반되는 두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나는 「일본」이란 호칭으로 포괄되는 긍정적인 것이고,다른 하나는 「왜」라는 접두사가 붙는 부정적 이미지다. 전자가 현재 및 미래지향적인 물질·문명의 측면이라면 후자는 과거 식민통치의 역사에 뿌리를 둔 정신·문화적인 측면이다.
우리 경제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60년대에서 지난 80년대까지 해외기술 도입건수중 55% 가량이 일본것이었다.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액의 49%도 일본으로부터였다. 경제의 대일예속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우리 경제의 성장·발전의 디딤돌이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우리는 이 나라 경제에 「일본」이라는 접두사를 붙이는데 서슴없다.
문화 역시 일본문화라 칭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침투됐거나 식민통치의 잔재 부분은 「왜색」 또는 「왜」라는 수식으로 비하시키는 경향이다. 예컨대 왜식집·왜색가요·왜말 따위다. 아예 우리 주변의 일본문화 자체를 왜색저질문화로 싸잡아 매도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위세로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오고 있는 왜식문화의 실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침투해 있다는 것은 곧 수요가 있고 선호한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전국 40여만 가구가 일본 위성방송을 시청하고 있고,비디오나 만화책이 성인용·어린이용 구분없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술집에선 가라오케가 성업중이고,심지어는 일본말을 모르는 청소년이나 대학생들까지도 일본가요를 흥얼거린다고 한다. 동경여성들의 화장과 의상 패션이 한주일이 채 못가서 서울에 유행된다고 들린다. 최근 TV인터뷰에 나온 한 일본인은 서울 명동거리에 나갔더니 이곳이 도쿄의 시부야거리가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정도더라고 비꼬았다.
엊그제 어느 일본신문이 자기네 다큐멘터리영화 한편이 한국영화관에서 개봉된다고 보도하자 우리 정부당국은 펄쩍 뛸듯이 즉각 이를 부인하고 나섰다. 일본 상업영화의 수입을 불허한다는 정부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초지일관의 자세를 강조한 것이다.
왜색문화가 범람하는 현실과 정부의 불허고수방침을 보고 있노라면 둑은 무너져 물바다가 돼가는데 걸어잠근 수문만 지키고 앉아있는 눈먼 문지기 꼴이 연상된다. 알맞게 문을 열어 수위를 조절하고,터진 둑을 보수하는 것이 뒤늦게나마 해야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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