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G10으로 ! ⑨ 수출이 내수 이끌게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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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수출이 늘면 수입이 늘어난다. 우리처럼 완제품을 주로 수출해 먹고사는 나라는 더 그렇다.

예를 들어 값으로 100이 되는 전자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46만큼을 수입 부품과 기계를 사서 써야 한다. 그래서 수출이 늘어도 내수가 살아나지 않고 일자리도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 자동차.전자 등 우리의 주력 제품의 관련 산업들이 시원찮고 이들과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서다.

그래서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재윤 수석연구원은 관련 부문 간 '가치 창출의 사슬(value chain)'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 조선업이 세계 1등을 달리고 있는 데는 포스코의 값싸고 질 좋은 철강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최근 기계류 수출이 늘어나는 것도 그 기계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첨단 장비 및 설비 부문의 경쟁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금형은 1970년대만 해도 거의 전량을 수입해서 썼다. 이에 정부와 업계가 '전초병'산업 금형에 일찍이 눈을 돌려 지금은 한 해 수출이 12억 달러에 달한다. 만년 무역적자를 보는 일본에 대해서도 무역 흑자를 낼 수준이 됐다. 금형 부품업체인 재영솔루션의 김학권 사장은 "기술에 있어서는 일본을 앞선다"고 자신한다. 플라스틱 금형 분야는 한국이 세계 4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탑엔지니어링도 제조업 가치사슬의 윗 부문에 집중해 성공한 사례다. 방규용 특허팀장은 "일본 LCD 장비업체들과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피 터지게 경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오랜 약점인 장비 부문에서 한국 업체의 R&D 능력이 기술에서 일본 업체와 겨룰 정도로 수준이 껑충 뛰었다는 얘기다. LG필립스 LCD 등에 납품하고 있는 탑엔지니어링은 대만.중국에서도 LCD 생산라인 구축에 참여하고 있다.

위는 첨단 기계장비, 아래는 부품 소재가 좋은 최종 제품 생산과 연계돼 높은 소득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그 가치사슬이 탄탄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드웨어는 그렇다 치고 소프트웨어는 어떤가.

한국 후지제록스 다카스기 노부야(高杉暢也) 최고 고문의 경험을 보자. 후지제록스는 복사 '토털 서비스'회사다. 그래서 전체 매출 중 복사기 판매가 30%, AS가 70% 정도여야 한다. 그러나 98년 그가 부임할 당시 코리아제록스는 그 반대였다. 판매 대수 늘리는 일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가 판매와 AS 매출 비중을 정상으로 돌리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국 고객들이 '공짜 서비스가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다카스기 고문은 "IT.브로드밴드.디지털 왕국이라는 국가이미지에 서비스웨어 등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접목시킨다면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공짜'라는 분위기 속에서는, 제품의 설계와 디자인이 생산으로, 그리고 판매 후 AS로 이어지는 '소프트웨어의 가치사슬' 또한 취약할 수밖에 없다.

2004년 컨설팅.디자인.엔지니어링 등 비즈니스 서비스에 대한 적자만 51억 달러였다. 소프트웨어의 가치사슬이 취약해 엄청난 부가가치와 일자리가 나라 밖으로 새나가고 있는 것이다.

종횡으로 가치사슬을 엮자. 위아래(하드웨어)로는 부품 소재부터 첨단 장비에 이르기까지, 좌우(소프트웨어)로는 설계.디자인부터 AS에 이르기까지, 그 소득과 일자리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도록 가치사슬을 튼튼히 하자. 그것이 '내수와 따로 노는 수출, 일자리 없는 성장'을 '내수를 살리는 수출, 일자리가 늘어나는 성장'으로 바꿀 수 있다.

◆십자형 산업구조란=물건을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소재와 공장을 짓는데 들어가는 기계.장비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 제품의 디자인.설계와 판매 서비스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국내에서 이뤄지도록 가로.세로로 엮어진 산업구조.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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