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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단축은 다음정부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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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을 시사한 이후 이 발언이 나온 배경과 실효성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군 복무기간은 1990년까지 육군 33개월, 해.공군 35개월이었던 것이 지금은 육군 24개월, 해군 26개월, 공군 27개월로 줄어들었다. 특히 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각 군의 복무기간은 2개월씩 줄었으며, 공군은 그 후 1개월을 추가로 단축했다.

군 개혁을 위해 국방부는 2005년 '국방개혁 2020'안을 마련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현재 68만 명 규모의 병력을 병사 중심으로 감축, 2020년에는 50만 명 수준까지 낮추는 것으로 돼 있다. 그 대신 부사관 수를 3만여 명 늘려 전체 병력 중 간부 비율을 현재 25%에서 40% 수준으로 높인다는 것이다. 이 계획에는 사병 위주 병력 감축에 따른 숙련병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급 지원병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군 복무기간 단축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후속 조처로 2006년 9월 '병역자원 연구기획단'을 발족시켜 여기서 병역제도 전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청년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병역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은 다각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군 복무와 높은 대학진학률로 선진국에 비해 노동시장 진입 연령이 매우 늦다. 또한 조기 퇴직 등으로 생애 근로기간이 짧다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생애 총 근로기간을 늘리려는 정부의 정책은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같이 중대한 국가의 장기적 계획이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통해 불거져 나오면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 더구나 지금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소위 대선정국이다. 과거의 전례에 비춰 보면 수없이 많은 장밋빛 공약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적 특수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선과 무관하다는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다.

군 복무기간 단축은 실행에 앞서 몇 가지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복무기간 단축이 전력 약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복무기간 단축으로 군의 전투력 유지에 필요한 병역자원 확보가 힘들고, 병역자원이 질적으로 저하될 수 있다. 부족한 병역자원 문제는 전투.작전과 직접 관련이 적은 행정.군수 등 전투근무 지원 분야에서 과감한 민간 아웃소싱을 통해 일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숙련된 병사를 확보하기 위해 유급병제를 도입한다면 민간 노동시장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금전적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역 상비병력의 감축은 예비군 동원전력의 정예화로 보완돼야 하는데 이 역시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은 부담을 과연 우리 국민이 추가로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에 대한 여론 수렴 작업도 거쳐야 한다.

이런 방책들은 중.장기 계획으로 이루어져야지 즉흥적이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인기 영합적으로 특정 정치집단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돼서는 곤란하다. 현 정부는 병역제도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되 이를 사회적 공론에 부치는 것은 다음 정부의 몫으로 남겨두기를 강력히 권유한다. 또한 차기 대권에 뜻을 두고 있는 예비 후보자들도 이 문제를 정략적 쟁점으로 삼지 말고, 국민적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차분히 지켜볼 것을 부탁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정책적 구상이라도 그것이 표출된 시점과 그 발상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이 있을 때에는 시행을 서두르는 것보다 잠시 물러서 있는 것도 좋다. 더구나 이제 임기를 마무리해야 할 이 정부가 사회적 파장이 큰 쟁점을 끌고 나와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다.

홍두승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