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인기 아나운서 박종세씨|소서 뜻밖의 애국가 열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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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5시간. 러시아공화국의 올리오리 실내체육관에 낭랑한 목소리의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60∼70년대 인기절정의 아나운서였던 박종세(코래드 대표) 대한역도연맹 부회장.
단상에는 태극기가 오르고 금메달을 목에 건 고광구(조선대) 선수는 하염없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생애 첫 국제대회 금메달의 감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1월 태극마크를 달았으나 2진급 선수로 2류 대회인 두루즈바컵 역도대회(2월28∼3월2일)에 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생애 최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한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소련하늘 아래서 육성으로 울려 퍼지는 애국가와 함께 가슴 깊은 곳까지를 저며왔기 때문이다.
고가 이 같은「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갖게된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한역도연맹의 부주의(?)에서 비롯됐다.
국제대회 출전 선수단에서 으레 갖춰야할 단기(태극기)·국가(녹음테이프) 중 테이프를 실수로 준비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사실은 대회자체가 동구권 국가들의 지역대회일 뿐 아니라 52㎏급의 고가 보유한 기록이 2백32.5㎏(용상)으로 입상 전망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난해 전병관(고려대) 시상식에는 국가연주가 없었던 전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가 자신의 최고기록을 무려 12.5㎏이나 능가하는 기염을 토하며 2개의 금메달을 따냈고 한국선수단은 궁여지책 끝에 임시변통으로 박 부회장으로 하여금 생음악(?)으로 두 번씩이나 애국가를 부르게 한 것.
이 같은 해프닝은 지난 작년 미국에서도 있었다.
지금은 대한레슬링협회 전무이사가 된 한국레슬링의 대부 장창선씨가 톨레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금메달을 따냈다.
그때도 애국가 테이프를 준비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결국 당시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에 유학 중이던 이시형(현 고려병원 신경정신 과장)씨가 시상식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애국가를 선창, 또 한번 감격의 눈물바다를 이뤘던 것이다. <김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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