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하늘의 길 땅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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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학법은 재개정되어야 한다. 악법이기 때문이다. 개방형 이사제라는 것은 잘못된 세력이 사학에 침투하여 학교를 지배할 수 있는 길을 터 줄 수 있다. 관선이사 파견 조건도 너무 느슨하다. 단 한 명이 계획적으로 학교를 골탕 먹일 수도 있다. 일단 학교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치기만 해도 교육인적자원부는 관선이사를 파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 관선이사들이 학교를 좌지우지한다. 수도권의 한 대학은 이미 해방구가 된 지 오래다. 서울의 한 유수한 대학은 관선이사들이 아예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전교조 같은 세력이 멀쩡한 학교를 문제 학교로 만들어 언제든지 접수할 수 있다. 한 사람이 학교를 세울 때는 자신의 교육관을 실현코자 사재를 터는 것이다. 그런 건학의 뜻을 국가는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법의 재개정을 놓고 지난주 개신교 목회자들이 삭발을 했다. 나는 사학법이 재개정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그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노조니 무슨 단체니 하면서 집단행동을 할 때는 거의 삭발식을 했다. 그러고는 붉은 띠를 둘렀다. 자신들의 집단이기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과시였다. 목회자들의 사학법 투쟁도 마치 이런 유의 투쟁으로 국민에게 비치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삭발한 한 교단의 단체장은 바울의 예를 들었다. 사도 바울이 순교를 위한 서원을 세우고 삭발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지금 며칠째 금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목적과 뜻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실현시키는 수단이나 방법이 합당치 못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수단의 선택은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땅에 매인 사람이면 땅의 수단을 택할 것이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하늘의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땅의 방법은 세속적 수단들이다. 권력과 돈과 무력, 또는 다중의 힘에 의존한다. 이러한 힘들 간의 충돌이 세속역사이다. 하늘의 방법은 이와는 다르다. 기독교 역사가 이를 말해 준다. 팔레스타인 유다 땅의 한 죄없는 청년이 십자가형을 받는 데서 기독교는 시작됐다. 그는 돈도 권력도 칼도 없었던 지극히 미약한 존재였다. 그가 바란 것은 이 땅의 평화뿐이었다. 그가 처형당한 지 300년이 못 돼서 당시 유일한 초강대국인 로마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난과 박해를 받고 마침내는 죽임을 당했던 그가 승리한 것이다. 하늘의 방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늘의 일과 땅의 일, 세속과 종교, 신앙과 정치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도 있다. 땅의 힘이 커보이고, 지상 논리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 종교도 세상을 따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종교의 세속화다. 신앙이라는 명분으로 세상의 상속제도처럼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준다면 하늘의 방법이라 말할 수 있을까. 종교가 땅의 방법을 이용하여 사람을 지배하려는 경우도 있다. 종교를 칼로 전파해야 한다고 믿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땅의 방법으로 하늘의 일을 성취하려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평화와 사랑이라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한 하늘의 뜻은 땅의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록 더디더라도 하늘의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종교 지도자들은 사학법 때문에 종교교육을 시키지 못하게 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어쩌면 그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계가 이를 시정하기 위해 취해야 할 방법은 하늘의 방법이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을 가진다. 기독교는 재력으로, 무력으로, 다수의 힘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멸시당하고, 압제당하고, 박해받을 때 성장했다. 좁쌀만 한 누룩이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듯 단 한 명의 뜻있는 사람으로도 학교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푸는 데 하늘의 방법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모른다. 다만 목회자들의 삭발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진정 종교교육을 위해서라면 먼저 반성하고 고백해야 할 것은 없는지 돌아보기를 권한다. 겁먹을 필요도 없다. 일제 때 폐교의 탄압으로부터도 지켜온 학교들이다. 어떤 권력도 하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늘의 방법을 찾는 사람들은 이기지 못했다. 그것이 모든 종교의 역사였고, 지금도 종교가 살아 있는 증거이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