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금배지는 가라/김동수(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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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의원 두개에 10원,국회의원 두개에 10원』­「껍데기는 가라」고 절규하며 60년대까지 암울하게 살다가 요절한 시인 신동엽이 국회의사당앞에서 술에 취해 마치 떨이장사처럼 이렇게 외쳤다는 일화가 있다.
그때보다 언뜻 민주화된 시대에 살며 새삼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지난 몇년동안 북새통을 벌인 국회의 꼴과 4천명이 넘는 새로운 의원을 뽑는 기초의원선거를 보며 갖는 감상때문이다.
게다가 물소동으로 한창 뒤숭숭하던판에 신문의 사진 한장과 텔리비전 화면을 스쳐가는 장면이 더욱 스산한 감상을 강요한다.
진상조사하러 대구의 수원지를 찾았다는 몇몇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신동엽이 몰아내려던 껍데기의 환영을 착각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구령에라도 따르듯 일제히 컵을 입에 물고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카메라앞에 도열해 있는게 여간 밉살맞지가 않다.
그럴수록 최근 몇달동안 그들이 내보인 치부가 연상되는 탓인지 그 근엄한 표정에 눈이 가기보다는 평소 갖소 있던 그들에 대한 편견이 시야를 가린다.
그래서 한장의 사진을 보는 눈길은 짓궂게도 그들의 얼굴보다는 가슴에 번쩍이는 금배지와 물컵에 머물러 트집잡고 싶은 마음뿐이다. 금배지로 상징되는 국회의원의 허상과 그 뒤에 감춰진 의식구조가 못내 찜찜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기 보다는 신동엽의 눈에라도 10원짜리는 훨씬 넘는 금배지를 앞세우는 정치인들,「금배지를 단다」는 말로 둔갑해 버린 선거,그래서인지 당선되고 나면 거의 예외없이 그들의 가슴위에 빛나는 배지를 시민도,당사자들도 당연한 것처럼 무심하게 넘겨왔다.
마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조직의 제복과 계급장처럼,충성심이 강요된 어느 사회의 구성원들이 달고 다니는 배지처럼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섬뜩하게 생각되는 것은 옹졸한 시민의 편견탓일까.
그뒤에 숨겨진 권위의식,보통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선민의식,그런 권위를 빌려 자행되어온 온갖 부정과 비리,배지들끼리의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반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별의별 어쭙잖은 상념들이 꼬리를 문다.
어린시절 한때 남이 달지못하는 배지를 내세워 우쭐했던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일제의 유산으로 물려받았던 학제밑에서 세칭 일류학교를 다니며 달았던 배지에 대한 긍지와 존경을 가진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정도 성장하고 나면 그때 가졌던 그런 치졸한 감상이 얼마나 부질없고 부끄러운 일이었던지는 또 누구나 경험했던 일이다.
요즈음은 대학생들마저 외면하고 있는 그런 껍데기 권위의 상징을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자랑스럽게 달고 다닌다. 의사당에서 육탄전을 할때도,달동네를 찾아 유권자를 만날때도,또 이번 물사건의 진상을 조사한다는 큰 일이 벌어졌을때도 금배지는 그들의 가슴위에서 어김없이 반짝이고 있다.
평등을 내세우는 우리의 선량들은 보통사람들보다는 자신들이 더 평등하다는 점을 과시하는 그런 의식구조를 그뒤에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심을 갖게 하는 언행을 접해본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 권위뒤에 숨어 풍파를 빚은 외유사건,수서사건과 같은 재론하기도 신물나는 일에서부터 보통사람들의 비판적인 정치적 견해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우리는 불쾌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몇달전 한 대기업 경영자가 공개석상에서 『이 나라를 맡길만한 지도자가 없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의견을 가진 보통사람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특정인을 지칭하지도 않은 개인적인 견해를 두고 어느 정당대변인은 『태도가 방자할 뿐 아니라 발언내용도 묵과할 수 없다』고 발끈했다. 어느쪽이 방자한 것인가. 이런 발언 역시 판단의 주체는 보통사람일 수 밖에 없다.
정치는 어느 특정집단,특히 금배지를 단 사람들의 독점물일 수도 없다. 바로 그런 독선과 비민주적인 사고의 틀속에서 지금의 비뚤어지고 뒤틀린 정치가 배태되고 있음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소리다.
그러한 토양속에서 지금 기초의회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파당적인 이익에 얽매인 타협의 소산으로 불법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합법이고 합법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탈법적인 선거를 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이용하면서 보통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권위주의에 젖어있는 허상의 껍데기가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음을 누구나 보고 있다. 외유사건,수서사건의 진통은 그러한 허상을 꿰뚫어 보는 시민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번 기초의회선거에서 당선되는 풀뿌리의원들에게도 그런 눈초리가 예외일 수는 없다. 그들도 배지의 자그마한 껍데기 권위에 현혹되지 않도록 채찍질하고 마음을 다잡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채비해야 할때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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