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회 긴급 모임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썩는다고 하다니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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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통수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군 비하' 발언에 예비역 장성들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은 21일 민주평통 상임위 연설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의 당위성과 주한 미2사단 한강 이남 철수 등을 거론하면서 전직 군 수뇌부들을 거칠게 비난했다.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는 22일 회장단 회의를 열고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간간이 울분을 토해냈다. 그럼에도 전직 군 수뇌부는 군 통수권자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막말은 삼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태(전 공군참모총장) 성우회 회장=먼저 노 대통령의 언급을 "중대 발언"이라고 규정했다. "노 대통령이 전작권의 실질적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합사령관은 비록 미국 사람이지만 우리 대통령의 부하라고 생각해야 하고, 그(연합사령관)가 마음대로 전쟁을 할 수도 없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자동으로 전쟁에 개입할 수 있지만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는 미국의 (한반도 전쟁에) 자동개입 조항이 없다. 한미연합사가 존재함으로써 미국이 자동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대 장관들과 총장들이 작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거들먹거리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너무 지나친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정진태(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부회장="지금 단독으로 국방을 하는 나라가 없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맹국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것이 자국의 주권을 침해받는다고 인식하는 지휘관은 하나도 없다."

▶안병태(전 해군참모총장) 부회장=노 대통령이 병사들의 복무에 대해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라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안 부회장은 얼굴을 붉히며 "국민의 신성한 의무를 썩는다고 표현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고 노병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국민에게 어떻게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정린(전 국방부 차관) 정책위의장="군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청와대)보좌관 등 그런 분들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성우회 회장단은 이날 회의 결과를 담은 성명서를 채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직접 공격 대상으로 삼은 역대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다시 만나 공식 의견을 모으기로 해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개병제에 대한 어떤 새로운 대안을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했는데 이를 선거철에 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 말은 정부의 입장인 만큼 조만간 회동을 갖고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예비역 장성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예비역 장성은 "정치적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노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기를 중심으로 진보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대표적 보수세력인 군을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역 군 장성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군을 일방적으로 매도한 듯한 발언에 불편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누구보다도 군의 사기를 챙겨야 할 군통수권자가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는다'고 표현한 것은 너무 지나쳤다"고 곤혹스러워했다.

◆ 참석자=김상태.정진태.안병태.송선용.이정린.이광학(부회장.전 공군참모총장).장창규(감사.전 한국국방연구원장).남정명(감사.전 해군참모차장)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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