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갈등 대비 불공정한 사회상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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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좀도둑의 아내와 땅 투기자의 아내가 된 두 국교 동창생이 집주인과 파출부로 만나게 되는 기묘한 상황설정의 드라마『도둑의 아내』(KBS-2TV)가 우리 사회의 비정한 단면들을 보이면서 독특한 드라마의 새장을 열고 있다.
물질문명과 빈부의 갈등의 심화된 결과로 살기 위해 사소한 도둑질로 복역하고 있는 좀도둑의 아내가 땅 투기로 치부한 부유한 집의 파출부로 일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시작부터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더하고 있다.
윤명혜 원작·극본의『도둑의 아내』는 대비되는 두 아내들의 상황에서 드라마의 재미를 드러내는 이면에 우리 사회에서 병들어 가는 도덕성의 파괴와 불공정한 사회의 관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범한 중산층 주부(선우 은숙 분)가 복잡하지 않은 평온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행복이 부동산 투기 같은 비도덕적인 원천에서 제공된 것이라는 자각은 이 드라마 전체를 이끄는 비극적 소재다.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남편을 만나 껌팔이·버스안내양·파출부를 전전하는 서민의 모습(정애리 분)이 대비되어 숙명적 삶을 그리며 멜로물에서 느끼기 어려운 성찰의 기회를 보여주기도 한다.
같은 국교 동창생이면서도 한 여자가 오페라 구경갈 때 다른 여자는 극장 앞에서 미제 초 컬릿을 팔고, 한 여자가 값비싼 과외 수업을 받으러 가는 버스에 다른 여자는 안내양으로 만나며, 부동산투기로 부유하게 된 중년이 된 여자 집에 다른 여자는 파출부로 일하게 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 설정이 우리 사회의 뼈아픈 현실을 드러내며 극복과정을 지켜보게 하고 있다.
특히 도시 여인의 단아한 이미지를 굳혔던 정애리가 10여 년만에 KBS작품에 재등장하면서 보기에 안쓰러운 비참한 모습으로 열연하는 장면들도 독특한 흥미를 더해 주고 있다.
또 복잡한 연애관계로 대중적 흥미에 영합하는 멜로물이 쏟아지는 가운데 『도둑의 아내』는 홈드라마의 새로운 깊이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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