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 잘돼야 민주정착”/최고령 당선 동작구 위병룡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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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화목 깬다” 경쟁자들 후보 사퇴
6·25때 월남한 실향민이 80고개를 넘은 고령에 제2고향 서울에서 30년만에 부활된 구의회 의원으로 뽑혔다.
13일 후보등록 마감결과 전국 최고령으로 무투표당선이 확정된 서울 동작구 상도 1선거구의 위병룡옹(80·서울 상도1동 73의 1·한의사)­.
위옹은 실제 나이보다 20년은 젊어보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역사적인 지방자치 참여에 넘치는 의욕을 보였다.
『우선 스스로가 모범시민이 되는 것이 구의원의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자제가 바르게 뿌리내려야 참다운 민주주의가 정착된다는 신념으로 임기동안 따스한 마음으로 이웃 주민들과 더욱 가까이 접촉하고 의견을 들어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2명 정원에 2명이 출마,무투표당선이 확정됐지만 위옹의 당선이 더욱 값진 것은 동네의 일치된 여론으로 위옹이 후보로 추대된 때문.
『사실은 나보다 젊은 일꾼들을 내보려 했던 것인데 4명의 출마준비자들이 마감 직전에 「우리들끼리 경쟁하면 화목하고 단합된 동네분위기가 깨질 염려가 있으니 모두 사퇴하고 위선배를 모시자」고 합의했다면서 집에 찾아와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출마를 수락한 것입니다.』
마감하루전 출마를 결정해 후보등록에 필요한 서류준비등에 시간이 촉박했으나 당초 후보로 나서려던 동네 후배들이 발벗고 나서 모든 심부름을 했다는 얘기다.
평남 평원이 고향인 위옹은 해방전 평양사범학교를 나와 15년간 교단에 섰던 교직자 출신. 해방되자 조만식 선생의 조선민주당에 가입,활동하다 6·25를 맞았고 사별한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당시 12세난 딸을 부모님께 맡기고 단신 월남했다.
한때 미 공군부대에서 간판 그리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52년 부인 이건순씨(64)와 재혼,안정을 찾았으나 57년 현재까지 살고 있는 집터에서 시작한 탈지면공장이 3년만에 불이나 다시 무일푼이 되고 말았다.
생계가 막연해진 위씨는 53세때인 63년 경희대 한의과대학에 입학,늦공부를 시작했다.
『뒤늦은 공부 뒷바라지에 생계까지 떠맡은 아내는 행상·떡장사 등 안해본 것이 없습니다. 당시 작아진 옷을 우리 아이들에게 입히라며 주고 때로는 먹을 것을 주기도 하는 등 따스하게 대해준 이웃들의 정이 내가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입니다.』
학생들이 교수로 착각,인사할 정도의 「늙은 학생」이었던 그는 69년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현재의 한의원을 개업,정착했다.
위옹은 한의원이 성업,하루수입 20여만원에 10억여원의 재산이 모이자 본격적인 사회봉사에 나섰다.
2남4녀 자녀를 다 결혼시켜 내보내고 부인과 단둘이 살며 8순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마음의 평화가 건강의 요체라고 강조했다.<윤석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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