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여성들 협박에 시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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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인천에 사는 직장여성 김모(27.여)씨는 2004년 봄 친구에게 500만원짜리 사채 보증을 서줬다가 빚을 대신 떠안았다. 김씨가 2년 동안 원금에 이자까지 합쳐 수천만원으로 불어난 돈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는 김씨의 부모에게 협박전화를 했다. "11월에 따님이 결혼할 때 채권 회수팀이 축하차 참석할 것이다. 신랑은 물론 일가친척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사채를 갚지 못한 20~30대 여성을 대상으로 공갈.협박을 일삼는 불법 채권추심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유사금융조사반 김기열 수석은 18일 "사채업자들이 협박에 약하고 법률 지식이 부족한 여성들에게 공갈.협박 등으로 불법 채권추심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의 주의를 당부했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사채업자들은 주로 '연체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겠다' '남편과 시댁에 알리겠다'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밤길 조심하라'는 등의 공갈.협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장한 남성 채권 추심원 여러 명이 집이나 사무실을 방문하거나, 약속 없이 찾아와 무조건 문을 열라고 하기도 하며, 심야나 휴일에 전화를 불쑥 걸어 압박을 가하기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평생 돈이나 빌리며 살아라''놀면서 뭐가 그리 바쁘냐''혀 깨물고 죽어라'는 등의 인격모독적 발언도 많은 것으로 신고됐다. 김 수석은 "전화로 공갈.협박을 받을 때는 녹음을 해두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며 "돈을 빌릴 때 등록 대부업체인지 확인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편 올 1~10월 여성들이 사금융과 관련해 금감원에 접수한 민원 361건 중 불법 채권추심이 54%(195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공갈.협박이 55%(107건)로 가장 많았으며, 제3자에게 채무 내용을 통보하는 것이 28%(54건), 사생활 침해가 17%(34건)로 집계됐다. 국내엔 약 4만5000개의 사금융 업체가 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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