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는 장기전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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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에 사는 주영이는 올해 고입에 실패했다. 초등 5학년 때부터 요리사의 매력에 빠졌던 주영이는 한국조리과학고에 도전했지만 경쟁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창규는 평소 수학·과학을 잘 하고 좋아하는 학생이다. 시험 때가 아닌데도 수학 문제집을 혼자 풀면서 시간을 보낼 정도다. 수학·과학 시험은 언제나 만점에 가까울 정도였고, 관련 책도 상당히 많이 읽었다.
창규는 과학자가 되는 꿈을 품어왔다. 중 2학년 말 과학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과학고를 준비하는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는 이내 포기해야 했다.

# "요즘 애 교육 왜 이렇게 힘드나."
전국으로 강연을 나가는 필자는 학부모에게 많은 질문을 받는다. 대부분 자녀 학습·진학·진로 문제들이다.
"논술을 시작해야 하는데 어떤 학원이 좋을까." "특목고 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하나요." "공부를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은 왜 제자리인가요."
학원 정보에서부터 진학·학습 문제 등 질문은 다양하다.
학부모들은 공통으로 "요즘 왜 이렇게 아이들 교육이 힘든지 모르겠어요"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 예전엔 입시와 진학의 노선이 비교적 단순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좋은 학교에 가면 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목표치를 낮추거나 일찌감치 직업 전선에 나섰다. 선택의 폭이 비교적 단순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고교·대학은 학교마다 전형이 다르고, 전형별로도 자격요건이 세세하게 나눠져 있다. 또한 전형요소들이 매년 조금씩 바뀐다. 아무리 유능한 학교 교사라고 해도 많은 학교의 입시전형을 다수의 학생에 맞게끔 치밀하게 전략을 짜주기가 힘들다. 같은 조건으로 A학교를 지원했으면 합격했을 학생이 정보 부족으로 B학교에 지원했다가 낙방하는 경우도 많다.

# 학교 종류·특성 다양하고 복잡
한 예로 고교의 종류만 따져보자.
과거 부모 세대는 인문·실업계 범위에서 대부분 진로를 선택했다. 하지만 요즘은 유형별로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고교의 종류가 많아졌다. 그만큼 지원자격도 다양해졌다.
외고·과학고 등 특목고, 국제 인재 양성이 목표인 국제고, 기업이나 개인이 자산을 투자해 설립한 자립형 사립고, 영재 발굴·육성을 목표로 국가에서 세운 영재고, 농어촌 소재 학교를 키우기 위해 운영되는 자율형 학교, 한 부분의 영역을 특성화시킨 특성화 고등학교 등. 여기에 예체능계 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의 종류·특성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평균점수·학교 등수 등 학업 성취도를 대표적인 기준으로 내세워 인문계와 실업계로 분류했던 부모 세대의 눈으로 보면 머리가 핑핑 돌 정도일 것이다.
초·중·고 시기의 교육 시스템을 보면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선택이 기다릴 것이다. 학부모이자 의사인 K씨로부터 "두툼한 책 한 권 분량의 대학 입시전형을 며칠씩 씨름하면서 읽었지만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디.
전국에 주영이, 창규와 같은 학생들이 적지 않다.

# 장기 학습계획 필요
주영이는 평소 조리과학고 진학의 꿈만 있었을 뿐 자신은 물론 부모 역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미리 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학교 기준에 맞게끔 내신 관리를 하고, 외국어 실력을 기르는 등의 준비를 한 뒤 지원하는 학생들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이다.
창규 역시 '공부만 잘하면 좋은 학교에 간다'는 부모의 낡은 사고방식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창규가 수학·과학에 재능을 보인다고 판단했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고를 목표로 교육청이나 대학의 부설 영재교육원 수료, 경시대회 및 올림피아드 참가, 내신 관리 등의 장기 학습계획표를 세웠어야 했다.
강남 8학군 어머니들의 최고 강점은 '10년 장기 입시 계획표'를 갖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지역 어머니들은 '코앞에 닥친 학교 시험'을 목표로 움직인다. 복잡·다양하게 얽힌 입시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학교 시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6개월 이내의 단기 계획표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특목중부터 고교·대학에 이르기까지 학교 진도와는 별도로 심화한 학습 역량을 쌓고, 각 학교의 인증시험·경시대회 등의 자격도 갖춰야 하는 등 '입시 장기 계획표'를 함께 준비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교육 현실이기 때문이다.

02-538-0202
김은실 멘토엔멘티 대치점 소장
교육전문작가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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