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시집 잇따라 출간|민중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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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민중시인들의 연 시집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고정희씨가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 (들꽃세상간)를, 안도현·정안면씨가 각각 『그대에게 가고 싶다』 (푸른숲 간), 『사랑을 찾아서』 (황토 간)를 펴냈다.
이들은 80년대 광주로 대표되는 정치·사회 상황이나 남녀·계층간의 갈등, 전교조 문제등 사회의 모순 구조를 강한 어조로 고발하던 이른바 민중시인들. 그러나 최근 펴낸 시집들에서는 사랑을 노래하며 90년대 민중시의 한 변모된 모습을 보이고있어 주목된다.
『가을에는 편지를 쓰자./오욕에 물든/허접 쓰레기 마음은 버리고/증오와 미움의 얼굴을/한없이 용서하고/그립고 사무치는/사랑의 편지를 쓰자….』(정안면의『엽서 한장』중).
노동 현장 체험을 통해 열린 참 세상을 분연히 노래하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노동 시를 발표해오던 정씨가 이제 「싸움의 미학」을 버리고 화해의 편지를 쓰자고 한다.
『한번은 만났고/그 언제 어느 길목에서 만날 듯한/내 사랑을/그대라고 부른다』 (『그대』중)며 펴낸 안씨의 『그대에게 가고 싶다』도 구체적 여인이든, 분단된 우리의 땅 덩어리든 「그대」를 향해 쓰여진 연 시집이다.
성차별 등으로부터의 해방을 목청껏 외쳐왔던 여류시인 고정희씨도 『아름다운 사람 하나』에서 아무리 가 닿으려해도 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 하나에 대한 기다림, 자기 희생 등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민중시인들의 이같은 연애시 쓰기는 민중 문학의 대중화 운동 일환으로 일단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투쟁의 정서」「싸움의 미학」만을 부르짖으며 시를 황폐화시켰다는 소리를 들어왔고 그 결과 대다수의 시 독자들을 표피적 감상만 난무하는 상업시에 빼앗기고 말았던 민중시인들이 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민중시 대중화 운동의 구체적 현상의 한가닥으로 연 시집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연시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나온 이들의 연 시집들에도 상업적 연애시들과 판별하기 힘든 유치한 감상의 시·시구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만해나 소월의 시들과 같이 좋은 연시들은 연애의 대상인 「님」이나 「그대」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과 대상이 무한히 확대돼 시적 깊이와 감동의 폭을 넓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나름의 사상과 형식을 갖추고 연시에 접근하지 않으면 감상의 찌꺼기들만 확대재생산하는 상업성에 함몰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의 연시를 바라보는 평자들의 우려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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