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속도 늦춰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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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노화와 죽음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심지어 세금보다 피하기 힘들다. 우리가 아는 모든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매일 거울 속에서 마주 대하는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의 일부 연구는 노화를 피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사실 노화에 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노화는 피할 수 없는 불변의 현실이 아니라 언젠가는 조절이 가능할지 모를 생물학적 과정의 산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일부 동물이 노화하지 않는 듯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바다에 사는 냉수어(冷水魚) 대다수와 일부 양서 동물, 그리고 바닷가재는 일정한 크기에서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계속 몸이 자라고, 생식이 가능하며, 뭔가 때문에 죽임을 당할 때까지 산다. 이런 생물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들 유전자(그리고 어쩌면 인간 유전자) 속의 뭔가가 노화의 속도를 조절하며, 노화가 모든 생명체의 피하지 못할 운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구상 생명체의 역사를 통틀어 동물(그리고 그 세포)들이 겪어온 가장 보편적인 어려움은 식량 부족이었다. 약 70년 전 과학자들은 동물들이 평상시에 섭취하는 열량보다 30~40% 적은 열량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을 때 특이한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럴 경우 동물들은 대다수의 노화 관련 질병(암ㆍ심장질환ㆍ당뇨병ㆍ알츠하이머병 등)에 저항력을 지니게 되며, 수명이 30~50% 연장된다. 열량 제한이 노화를 늦춘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생명력을 보존하고 질병을 막는 근본적인 유전자는 무엇일까. 노화의 원인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방사선이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화학물질, 또는 산화제에 의한 DNA 손상의 축적이다. 모든 동물 세포 안에는 다수의 미토콘드리아가 존재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작은 ‘전원함’이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생산할 때 DNA와 세포 안의 다른 구성성분을 손상시키는 화학적 부산물(산화제)이 발생한다. 부당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동물의 세포는 그런 공격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동물의 세포 안에는 손상된 미토콘드리아를 치료하는 유전자를 포함해 DNA 손상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유전자들이 있다.

약 15년 전 분자연구라는 강력한 신기술로 무장한 소수의 과학자들이 이 유전적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MIT의 레너드 궈렌테 박사는 (이 기사의 공동 필자인 데이비드 싱클레어와 함께) 효모 세포에 Sir 2라고 불리는 유전자의 복제본을 투입했을 때 수명이 30% 연장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가 열량 제한으로 건강상의 이점을 얻는 과정에서 Sir 2 유전자를 포함한 시르투인 유전자(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에 존재한다)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유전자들이 DNA를 치료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시르투인 유전자를 작동시키려고 열량 섭취를 30~40% 제한해야 한다면 과연 실용성이 있는 방법일까? 늘 배고픔을 느낄 만큼 심하게 식사 제한을 할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방법으로 수명이 연장되든 안 되든, 인생은 더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는 열량 제한 없이 시르투인 체계를 작동시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2003년 소수의 시르투인 활성물질(STACs)이 발견됐다. 그중 효과가 가장 강력한 활성물질이 레스베라트롤(적포도주의 원료로 쓰이는 포도 등의 식물에서 생산되는 분자)이었다. 그 이후 여러 연구에서 레스베라트롤과 다른 시르투인 활성물질들은 효모ㆍ초파리ㆍ연충ㆍ물고기 등 그 물질들을 투여받은 모든 종(種)의 생명력을 강화하고 수명을 연장시켰다. 물고기의 경우 최고 59%까지 수명이 연장됐다. 인간의 수명으로 환산하면 194세까지 산 셈이다. 물론 놀라운 결과다. 하지만 레스베라트롤이 몸이 털로 덮인 온혈동물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지난 11월 초 싱클레어가 공동으로 이끈 한 연구팀은 과학전문 잡지 네이처에 포유동물의 수명에 미치는 레스베라트롤의 영향을 조사한 최초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식사 조건을 달리한 세 그룹의 중년 생쥐들을 비교했다. 한 그룹에는 표준 식사를, 다른 한 그룹에는 고열량ㆍ고지방 식사를, 나머지 한 그룹에는 고열량ㆍ고지방 식사를 레스베라트롤과 함께 섭취하도록 했다. 예상대로 고열량ㆍ고지방 식사 그룹은 표준 식사 그룹에 비해 체중이 증가했고, 지방간이 발병했으며, 심장 근육에 염증을 일으켰고, 당뇨병과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수명도 단축됐다. 고열량ㆍ고지방 식사를 레스베라트롤과 함께 섭취한 그룹은 이 합병증 중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았다. 그 생쥐들의 생리 기능은 마른 생쥐들과 같았다. 그들은 또 육체적으로 더 활동적이었으며, 운동능력 검사에서 표준 식사 그룹과 고열량ㆍ고지방 식사 그룹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레스베라트롤이 사망률을 30% 감소시켰다는 점이다.

11월 중순 과학 전문잡지 셀(Cell)에 또 다른 연구 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레스베라트롤을 섭취한 생쥐들이 그렇지 않은 생쥐들에 비해 몸이 더 말랐으며, 유산소 능력(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산소를 활용하는 능력)이 훨씬 강화됐다. 또 그들의 근육은 랜스 암스트롱(미국의 세계적 사이클 선수)의 근육처럼 튼튼했다. 산소를 좀 더 효율적으로 소비하고, 건강한 미토콘드리아의 수가 훨씬 더 많아 에너지를 생성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생쥐들은 전에 러닝머신 위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데도 다른 생쥐들보다 두 배나 먼 거리를 달렸으며 피로한 기색도 없었다. 적어도 생쥐에게는 레스베라트롤이 매우 효과적인 운동능력 향상제다.

레스베라트롤이 노화 관련 질병을 예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적인 증거도 제시됐다. 세계 각지의 여러 연구소에서 레스베라트롤이 생쥐의 심장질환과 암ㆍ당뇨병ㆍ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질병들은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주범이다.

이런 연구 결과들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최근 연구의 생쥐들처럼 우리 중 다수 역시 고열량ㆍ고지방 식사를 하는 중년의 포유동물이다. 예외는 있지만 생쥐에게 적용되는 사실은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2007년에는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노화 연구가 훨씬 더 많아질 전망이다. 레스베라트롤과 관련된 최초의 인간 연구 중 일부는 레스베라트롤이 제2형 당뇨병이나 멜라스(MELAS)증후군(뇌와 근육의 파괴를 초래하는 소아 희귀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를 조사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레스베라트롤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좀 더 강력한 시르투인 활성물질을 찾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이미 몇 가지 물질이 발견됐으며 그 물질들이 동물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가 진행 중이다.

레스베라트롤이 적포도주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적포도주를 더 많이 마셔야 할지, 혹은 다른 알코올 음료를 모두 끊고 적포도주만 마셔야 할지 묻는다. 하지만 적포도주에 들어 있는 레스베라트롤의 양은 그런 조치를 취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 생쥐들에게 하루에 투여한 레스베라트롤의 양은 적포도주 1000잔을 마셔야 섭취되는 양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처방전 없이 레스베라트롤 알약이나 캡슐이 구입된다. 그러나 레스베라트롤이 인간에게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고, 이 제제들의 생산 과정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통제를 받지도 않는다. 레스베라트롤이나 다른 시트루인 활성물질들이 의약품으로 승인받게 될지, 또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음 7~10년 사이는 아닐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치료법에 관한 생각만으로도 몸서리를 친다. 생명이 연장된 기간 동안 골골거리며 지력이나 체력에 결함을 지닌 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스베라트롤 처치로 생명이 연장된 동물들은 모든 면에서 끝까지 활력이 넘쳤다. 건강과 활력을 유지시켜주는 의약품은 미국 경제에 수십 조 달러의 절약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추정돼 왔다. 일례로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영구적으로 1% 줄인다면 현재와 미래의 미국인 세대들에게 약 5000억 달러의 경제 효과를 주게 된다. 많은 과학자가 미국 의회에 노화연구에 배정된 경제적 지원을 늘리고, 아폴로 우주개발 계획에 버금가는 노화연구 계획을 수립하라고 촉구한다. 우주계획으로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은 단지 몇 명에 불과했지만 제대로 된 노화연구 계획이 수립될 경우 100세 이상 장수하면서 활기차고 생산적인 생활을 누리게 될 사람은 수백만 명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하버드 의대의 병리학 교수이자 동 대학 폴 F 글렌 연구소의 공동 소장이며, 레스베라트롤의 시험을 실시하는 시르트리스 제약회사의 공동 설립자다. 코마로프는 하버드 의대의 심콕스-클리퍼드-힉비 의학 교수이자 하버드 헬스 레터의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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