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레슬링대표 급조 국제대회 출전"무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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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여자레슬링」하면 곧 아슬아슬한 수영복차림의 대형글래머들이 등장, 최고의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프로레슬링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프로레슬링이 아닌 아마추어레슬링의 국내 여자대표팀이 이미 구성되어 이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사상 최초로 해외무대(91대만국체초청대회·6∼8일·타이베이)에 출전한다.
여고생4명·대학생3명이 전부인 국가대표팀이 구성된 것은 불과 20여일 전.
말이 국가대표고, 말이 선수지 레슬링을 해보겠다는 전국의 지원자 15명 중에서 골라낸 7명이 레슬링의 걸음마를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국내대회 출전은커녕 정식대회 구경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여자레슬링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망신당할 건 기정사실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걸머져야할 십자가」를 자청해서 맡았고 또 일단 희생양이 되기로 작정한 이상 「먼저 썩는 밀 알」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입니다.
남장문(부산 경희여상 코치) 대표팀 감독의 각오는 대단하다.
그러나 선수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전남 체고에서 유도를 전공, 지난해 대한체육과학대에 진학, 불과 한달 전 호기심에서 레슬링을 시작한 민경희(19·47kg급)는 『레슬링이 재미있기는 해요.
하지만 너무 힘들고 과연 레슬링을 계속할 수 있을지의 문제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어요.
국제대회에 가서 세계적인 수준을 보고 나면 윤곽이 잡힐 것도 같아요』라는 조심스러운 태도다.
민의 경우처럼 대한체육과학대 1, 2년 생인 3명의 대학생(천순분·전경난)들은 모두 유도 고단자 출신.
반면 고교생(김희정·최은정·정숙자·박은숙)들은 국내 유일한 여자레슬링부가 있는 부산 경희여상 재학생들로 팀 창단 2개월만에 국가대표가 된 「초고속 출세」선수들이다.
2일 출국을 앞두고 지난달 5일부터 하루6시간의 강훈을 받았으나 이제 기초과정을 간신히 끝낸 상태라는 게 신용업 대표팀 코치의 평가.
유도선수인 여대생들의 체력은 그런대로 쓸만한데 유도기술이 몸에 배어있어 레슬링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딘 반면 여고생선수들은 기술습득은 빠른데 체력이 달리는 것이 큰 고민거리.
유럽에서는 이미 여자레슬링이 뿌리를 내려오는 9월 일본 동경에서 열리는 제3회 세계선수권대회에는 30여 개국의 출전이 예상되고 있고 아시아에서도 이미 일본과 대만이 세계정상을 두드릴 만큼 집중적인 육성을 해온 상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은 한체급 우승을 따냈고 남자보다 오히려 여자쪽에 비중을 두는 대만은 2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대만대회에서 남자레슬링의 세계정상급인 한국의 체면이 손상 당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시작은 해놓고 보아야한다』는 다분히 맹목적인 의견이 신중론을 뿌리치고 국제대회 출전을 강행하고 있다. 마치 작년 북경 아시안게임 때의 여자축구와 흡사하다.
대표팀의 운영은 물론이고 여자레슬링의 육성여부마저 레슬링협회의 방침으로서 전혀 연구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부 임원의 욕심으로 추진되는 상황이 몹시 성급하다는 느낌이다. <김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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