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비트] 헤리코 칸투아크 '바스크의 대중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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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의 원산지이자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의 무대, 이천수 선수가 뛰고 있는 프리메라리가 축구팀 레알 소시에다드의 본거지. 어쩌면 이 정도가 우리가 갖고 있는 바스크에 대한 단편적 지식일 것이다. 바스크는 스페인 북동부와 프랑스 남서부, 그리고 피레네산맥 양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바스크 민족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 때였다. 내전을 거치면서 스페인에 강제 편입된 바스크는 프랑코 총통의 철권독재정치 아래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가혹한 탄압을 견디며 바스크사람들은 59년 '자유조국바스크'(ETA)를 결성해 무장테러를 시작했다. 다른 혈통과 독자적 언어로 결코 스페인과 동화될 수 없는 자신들의 힘겨운 처지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테러와 살인행위가 용서받을 수는 없지만, 채 3백만명이 안 되는 바스크인들은 그렇게라도 힘없는 소수민족의 설움을 온 몸으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헤리코 칸투아크(국민의 노래)-샹 포퓔레르 뒤 페이 바스크(바스크의 대중음악)'앨범은 제목처럼 바스크 지역의 음악모음이다. 그간 국제적으로도 구하기 어려웠던 바스크 음악을 우리 음반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넓어진 월드뮤직의 저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첫 곡 '바스크 땅에서 바스크어를'부터 이국적인 멜로디가 귓전을 감싼다. 바스크 최고의 그룹으로 평가받는 오쉬코리의 이 노래는 난생 처음 맛보는 음식처럼 신선하기 그지없다. 중견가수 피에르 파울 베르사이츠의 '정원'은 목가적 서정미로 가득하다. 피아노와 어우러진 평화로운 플루트 연주는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듯하다. 바스크의 국민가수 베니토 레르춘디는 '발도르바'에서 오랜 연륜이 느껴지는 아름답고 여유로운 노래를 부른다.

그룹 이파랄데코 호게이소르치 칸타리가 부른 '당신은 아침을 봅니다'는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희망을 전한다. 바스크가 배출한 두 월드스타 아마이아 수비리아와 초민 아르톨라는 '좋은 시절의 아침'에서 바스크 포크의 진수를 전한다.

기계적 연주를 거의 배제한 음악 때문에 음반을 다 듣고 나면 싱싱한 들풀 향기가 온 몸을 감싼 느낌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이들의 고된 역사만큼이나 비장미와 애잔함이 서럽게 흐른다. 바스크음악의 정수를 맛 볼 수 있는, 품격 있는 '성찬'이다.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mbc-fm '송기철의 월드뮤직'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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